여름 한 가운데에서 교실 마티네 콘서트를 열었다.
한 달 동안 아이들에게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주었다. 등장인물이 많고 낯선 문화가 담긴 외국 문학이라 과연 좋아할까 염려했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재미있어하고 통쾌해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을 좀 더 오래 간직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책과 음악의 만남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어울리는 클래식으로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음악회는 작년에 이어 아르케 컬처 다영쌤과 함께했고, 이번에는 라벨의 음악을 꼭 넣어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후 클래식을 한 곡씩 들려주는데, 어느 날 라벨의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아이들이 말했다.
“어? 음악이 오늘 들은 이야기랑 이어지네!”
앨리스 이야기와 라벨의 음악이 가진 환상성을 아이들은 놀랍게도 알아차렸다.
마침 올해는 라벨 탄생 150주년이기도 하다.
공연 전 아이들에게 좌석 번호가 적힌 티켓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각자 번호를 확인하고 자기 좌석을 찾아 앉았다. 그것부터가 공연 관람의 시작이다.
바이올린, 피아노, 바순의 합주로 우리만을 위한 실내악이 연주되었다.
슈베르트는 유독 실내악 연주를 선호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실내악을 들을 때 음악이 더 친밀하게 다가오고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좋아하는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 순간 벅찬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 장면을 되돌아보고, 에릭 사티, 생상스,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은 더 크게 상상하고 꿈꾸며 다시 앨리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교실 안에 음악이 흘러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마지막 라벨의 음악을 듣기 전,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이번에는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려보자고 했다.
우주로 날아가는 모습, 꽃밭이 가득한 들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회오리가 부는 장면 등등...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공들여 그린 준상이의 그림이었다.
넓은 바다에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습이었다.
항상 장난 잘 치고 웃음기 가득한 준상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줄은 몰랐다.
내가 몰랐던 아이 진중한 내면 세계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콘서트에 앵콜곡이 빠질 수 없었다.
앵콜곡은 <나는 반딧불>이었다. 우리 반의 가수 동원이가 무대 중앙으로 나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줬고, 곧이어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불렀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연주자 선생님께 궁금한 점을 질문하며 음악가라는 직업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기회도 가졌다.
마지막에는 사인회도 열었다.
아이들은 줄을 서서 연주자 선생님과 마주하며 공연 소감을 나누고 티켓 뒤에 사인을 받았다.
아이들의 모습은 예술의전당에서 좋은 공연을 본 후 설레는 표정으로 연주자에게 사인을 받으며 좋아하는 관람객의 모습과 같았다.
“얘들아. 오늘 공연 어땠어? 음원으로 듣는 음악이랑은 좀 다르지 않아?”
“네. 완전 달라요! 와~~~.”
아이들은 “아까 그 악기 뭐였더라?” 하며 바순의 이름을 자꾸 까먹긴 했지만, 오늘 실황 음악이 주는 감동은 제대로 느낀 듯했다.
푸르름이 가득한 여름,
시골의 작은 학교 5학년 1반 교실에서
우리들의 음악은 그렇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