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하루 중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아이들이 하교한 후 빈 교실에서 음악을 듣는 순간이다. 베를린필의 음악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교실에서 나는 청소를 하고,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고, 업무 처리를 한다. 때로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문을 열고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간다. 그 순간, 음악과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인사가 어우러져 내게 큰 기쁨을 준다.
국립중앙도서관 사이트를 통해 베를린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Berlin Philharmonic Digital Concert Hall)에 접속하면 연주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유튜브로 음악을 들을 때는 중간중간 갑자기 광고가 나와 흐름이 깨져 듣기 힘들었는데, 베를린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에서 들으면 그런 방해 없이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나는 매일 베를린필의 연주를 듣는 오후를 보낸다.
여러 클래식 중 특히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한다. 이번 주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에 빠져있다. 한없이 맑다가, 슬프다가, 결국에는 아름다워지는 음악. 감탄하게 된다. 키신과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버전을 번갈아 듣는데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키신은 폭넓고 풍부한 느낌,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느낌이다.
음악은 내가 아주 힘든 시기에 보낼 때 나를 유일하게 위로해 준 존재였다. 어떤 글도 읽고 싶지 않고, 어떤 말도 듣기 싫었던 시절, 음악만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음악이 단지 위로의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힘든 순간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음악을 듣는다. 마치 숨을 쉬고 물을 마시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곁에 둔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평온함이 너무 소중하다.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 그랜드 피아노가 마루 한가운데 놓여있었던 ‘노미숙 피아노학원’에 다녔다. 목욕탕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사달라고 하면 얄짤없이 안 된다고 했던 엄마는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피아노를 갖고 싶어 했던 내게 영창피아노를 사주셨다. 탐스러운 꽃과 넝쿨이 음각으로 새겨진 브라운 색깔의 피아노에 새하얀 레이스 커버까지 입혔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나는 늘 피아노 의자에 앉아 먼저 건반부터 두드렸다. 그 피아노로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삼촌 결혼식에서도 행진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비록 수상은 못 했지만 난생처음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콩쿠르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체르니 40번까지 배우긴 했는데 어느 순간 피아노가 지겨워져 엄마 몰래 학원을 빼먹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손이 굳어 제대로 한 곡 연주하지도 못한다.
우리 집에는 클래식 전집 세트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두꺼운 유리문이 달려있던 체리색 거실장에서 푸른색에 두꺼운 클래식 전집 세트를 발견했다.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 작곡가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10개가 넘게 있었던 것 같다. 그중 나는 1번의 바흐 케이스에서 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나는 그 테이프를 카세트 라디오에 넣어 틀어놓고 엎드려 누워 일기를 쓰곤 했다. 그런데 그 음악을 한 번도 끝까지 듣지 못했다. 항상 중간에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클래식 음악을 우아하게 감상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듣기만 하면 잠이 올까 야속했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당시에는 음악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몰랐다. 입시, 대학, 취직 등 인생의 여러 과업들을 해내며 내 안의 음악들이 다 흘러가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어린시절 음악들이 내 감성의 기초를 쌓아주었고, 그 시간들이 내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과 클래식 음악을 함께 듣는다. 하루에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나 최근 공연장에서 들었던 곡들을 골라 아이들과 나눈다. 배움노트 쓰는 시간에는 그날 들었던 음악 제목과 작곡가 이름을 적도록 하는데, 이렇게 날마다 조금씩 클래식 음악에 노출되다 보니 아이들의 일상에도 음악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슈만과 브람스를 옆집 아저씨라도 되는 것처럼 친근하게 부르고, 음악 신청서에는 쇼팽의 에튀드 '추격'을 써서 내고, 부모님과 함께 음악회에 다녀왔다며 자랑스럽게 티켓과 팸플릿을 보여준다
음악을 통한 이런 작은 경험들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어릴 적 클래식 음악을 접하며 그 경험들이 내 안에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듯,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음악을 들려준다.
오늘은 지난 주말 본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파게노 파파게나’를 들려줬다. 오페라에서 신나고 웃음이 절로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생각했다.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