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앞에서 마릴라 요나스

파벨하스 공연 입장을 앞두고 예술의전당 2층 소파에 잠깐 앉아 쉬다가 말과활아카데미에서 온 메일을 확인했다. 음감회 <살아있는 귀-‘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여성 피아니스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날 힘들어서 오늘 공연까지만 보고 당분간은 쉬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 터였다. 하지만 나는 ‘리스펙토르’,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조합을 보자 창을 닫을 수가 없었다. 신청 클릭.


합정동에 있는 말과활아카데미는 다세대주택처럼 보이는 건물 3층에 있었다. 다락방에 올라가는 것처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묵직한 문을 열자 누군가의 서재 같은 공간이 나왔다. 불은 꺼져있고 대신 테이블마다 작고 낮은 촛불이 켜져 있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은은한 불빛은 오랜만이었다. 나는 소음을 만들기 실어 조심스럽게 빈 자리에 앉았다. 준비된 따뜻한 TWG 홍차와 쿠키를 먹으며 음감회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사방은 책들로 둘러쌓여 있었는데 내 뒤쪽에는 내가 좋아하는 <먼 산의 기억>,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케테 콜비츠>의 책이 나란히 놓여있어 이 장소에 대한 믿음이 더 깊어졌다.


이번 음감회는 <리스펙토르의 시간>의 번역가 황은주님이 진행하셨다. 나는 매일 아침 CD를 골라 음악을 틀고, 한 달에 두세 번은 객석에 앉아 연주를 듣는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알아볼 수 있었다. 교양으로서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리스펙토르의 문장을 읽으며 그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었다. 모두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였다. 이렇게 여성 연주자들로만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감상한 건 처음인 듯하다. 아르헤리치를 제외한 4명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중 마릴라 요나스, 마리아 그린베르 연주가 유독 와닿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불꺼진 방에서 숨죽여 우는 것 같았고, 그럼에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들렸다.


이날 점심에 가족 식사 모임 자리에서 나는 그냥 엄마, 아빠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힘든 일을 털어놓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간신히 눈물을 참고 괜찮은 척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내 앞에 가냘픈 촛불을 응시하며 비극적이고 불우한 상황에서도 음악을 계속 이어갔던 그녀들의 녹턴과 열정을 들으니 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폴리니와 지메르만의 연주를 좋아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아픔과 절망과 후회를 온전히 받아준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건 그녀들의 연주였다. 음악을 듣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니 더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후련했다. 그전까지는 내가 내 스스로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또 싫었다. 그런데 음악을 들은 후에는 달랐다. 아이러니하지만 삶이 주는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음악이 있으니 괜찮았다.

이날 내가 수첩에 적어놓은 리스펙토르의 문장은 이것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로 붙잡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릴 이 지금-순간에 기뻐한다. 나는 패배하기를 거부하기에 바로 이 순간에 기뻐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

<아구아 비바>


순간들을 말하고, 열렬히 존재하며, 자신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헤엄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나도 내고 싶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음악을 듣는다는 번역가의 플레이리스트를 더 알고 싶었지만 눈물 자국이 나버린 얼굴이 못내 부끄러워 물어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클라리시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문학이 아냐. 그건 마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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