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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Dec 29. 2021

부장님에게 보답하는 방법

"나한테 보답하려고 하지 말고 나중에 후배한테 잘해줘."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남편은 준비하고 있는 시험 때문에 매일 이른 새벽 독서실로 향했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고, 입히고, 먹이고, 차에 태워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출근했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좀처럼 수월한 날은 없었다. 아침 시간은 늘 촉박했다. 허둥지둥 학교에 도착해 내 자리에 앉으면 숨이 찼다.  

   

아침을 거르고 온 나는 틈이 날 때 잠깐씩 연구실에 들렀다. 항상 연구실에 가면 탁자 위에 먹을거리가 놓여있었다. 떡, 빵, 감자, 고구마, 과일 등 부장님이 싸 오신 것들이었다. 견과류가 잔뜩 들어간 영양찰떡, 짭조름하게 찐 감자, 먹기 좋게 깎아 놓은 사과를 먹었다. 종일 챙겨주는 일만 하던 내가 누군가로부터 챙김을 받았다. 음식을 먹으면 허기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 어쩐지 마음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부장님은 학년에서 해야 할 일을 본인이 가장 많이 하셨다.

“부장님이 하셨어요? 저한테 시키시죠.”

“별거 아니라서 그냥 내가 했어.”

내가 일과 육아 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건 부장님이 대수롭지 않게 별것 아니었다고 말한 그 배려 덕분이었다.      


나는 부장님이 때론 언니 같고, 때론 엄마 같아 고민이나 걱정을 곧잘 털어놓곤 했다. 그때마다 부장님은 내 눈을 마주치며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해주셨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나는 어깨가 축 처지는 날이면 그 말을 되뇌고 또 되뇄다.     


언제나 받기만 하는 것이 죄송스러워 하루는 부장님에게 따님과 함께 드시라고 카페 기프티콘을 보냈다.

“항상 너무 감사드려요.”

그랬더니 부장님은 이렇게 답장을 주셨다.

“이런 거 안 보내도 돼. 내가 뭘 했다고… 그래도 자기 마음이 정 쓰인다면 나한테 보답하려고 하지 말고 나중에 후배한테 잘해줘. 그러면 돼.”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 올해 나는 부장직을 맡게 되었다.

‘부장님이라면 이렇게 하셨을 거야.’

나는 부장님을 떠올리며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부장님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와 배려를 묵히지 않고 후배 선생님들에게 전해보려 애쓴다. 지치고 고됐던 시절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부장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꼭 보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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