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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Feb 14. 2021

미술관 가기 좋은 날

“엄마! 아빠! 미술관 갈래요?”

 아이와 미술관에 가고 싶었다. 가려는 미술관은 버스와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목적지보다 목적지로 가는 과정을 더 즐거워하는 아이 때문에 평소 먼 거리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잘 다녔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망설여졌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복잡한 서울에서 운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긴장과 피로가 몰려왔다. 아무래도 친정 아빠 차를 얻어타고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미술관 갈래요?”



우리는 평창동에 있는 김종영미술관에 갔다. 이 미술관을 알게 된 것은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나는 미술관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건축이 아름다운 미술관을 좋아해 환기미술관, 뮤지엄산, 해든뮤지움, 솔거미술관 등을 찾아다녔다. 김종영미술관은 아이와 전에 두 번 와본 적이 있었다. 올 때마다 관람객이 거의 없어 우리만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새하얀 벽과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조각 작품들 그리고 곳곳에 크고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빛,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 내는 전시실의 풍경과 색감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미술관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층층이 내려가는 구조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공간을 옮겨 다닐 때마다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계곡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미술관 안쪽에는 연못이 있는 정원이 있는데 아이는 이곳을 가장 좋아했다. 연못의 돌다리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놀고, 돌다리 위에 쪼그려 앉아 연못에 비치는 하늘과 나무의 모습을 봤었다.


친정 부모님은 여행지에서 여행코스로 미술관을 가볍게 둘러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오로지 전시 관람을 목적으로 미술관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친정 부모님 댁에 가면 늘 TV에 미스트롯 또는 미스터트롯이 틀어져 있다. 하루는 내가 계속 보면 질리지 않냐고 물었더니 저게 60대한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아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트롯을 좋아하시고 시간이 날 때면 등산을 하거나 하천길을 걷는 게 두 분의 취미였다.


미술관 문을 밀고 들어가는 부모님의 표정은 무덤덤해 보였다. 나는 그때서야 엄마 아빠가 미술관을 지루해하진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부모님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내 만족을 위해 온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두 분은 미술관을 별 관심 없이 대충 둘러보실 것 같았다.


그런데 미술관에 들어서자 엄마 아빠는 작가의 연표와 작품 설명도 꼼꼼히 읽으시고 작품 앞에서 고개를 쭉 빼며 자세히 살펴보셨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두 분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 것이 반가워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미술관에서는 ‘예술가의 꿈-김종영의 조각과 드로잉’ 전시를 하고 있었다. 작품들은 주로 돌, 나무 등의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곡선의 형태가 많았다. 작품들은 군더더기 없이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잊고 있었던 나의 중요한 가치들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점이 재밌었는데 ‘작품 79-19’를 보고 아이는 파도 같다고 했고, 나에게는 그것이 기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자꾸 아빠에게 눈길이 갔다. 미술관에서 아빠의 걸음은 나보다 느렸다. 아빠는 작품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바라보셨다. 작품 앞에 오래 서 계시는 아빠의 모습이 어쩐지 뭉클했다.

아빠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아빠는 한 작품 앞에서 아이를 불렀다.

“도현아. 이거 봐봐. 이건 할아버지가 태어난 해에 그려진 그림이다. 할아버지가 1956년에 태어났거든.”

“네? 1956년이요? 그때도 물감 있었어요?”

아빠는 아이의 엉뚱한 질문에 웃으시고는 그림을 한참 바라보셨다. 나는 지나쳐 왔던 그림을 다시 가서 보았다. 60년이 훌쩍 넘은 그림은 분홍빛 나무와 파란 하늘이 그려진 수채화로 마치 어제 그린 것처럼 화사하고 투명한 빛깔로 칠해져 있었다. 그림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림을 보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싫다며 꼬박꼬박 약국에서 염색약을 사서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손수 염색을 하셨다. 아빠의 머리는 검었지만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뒷머리가 휑했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어있었고, 셔츠 깃 사이로 보이는 목에는 주름이 많았다. 언제나 깔끔하고 수려했던 아빠 얼굴이 어느새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얼른 그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빠는 마치 목련의 겨울눈처럼 보이는 한 조각 작품 앞에서 엄마를 불렀다.

“여보, 이거 봐봐. 옛날에 내가 모았던 수석 중에 이거랑 비슷한 게 있었잖아. 어디 보자. 1981년. 이거 우리가 결혼했을 때 만들어진 거네.”

“응. 그러네. 여보, 그거 알아요? 올해가 우리 결혼 40주년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나? 그때 신혼집으로 전세 오십 만원에 방 한 칸을 얻었었는데.”


아빠는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캡션에서 유독 제작연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셨다. 아빠의 작품 감상법은 ‘시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작품을 보며 세월을 되돌아보는 모습이었다. 아빠의 지나간 시간과 기억을 액자 안에 담아 보는 듯했다. 앞만 보고 쉼 없이 살아온 인생.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이제야 이 공간에서 갖게 된 것이다. 미술관에서 아빠의 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오래 몸담았던 직장에서 40년 가까이 일하시고 5개월 전에 퇴직하셨다. 매일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시던 아빠가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집에 계시는 모습은 낯설었다. 아빠는 다음 달 생일이 지나면 전철을 무료로 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경로우대 혜택을 받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미술관 신관에서는 ‘김종영미술상 수상기념전-박일순’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있었다. 커다란 사각형 나무 합판을 초록색으로 모두 칠하거나 초록색 바탕에 흰색 스크래치를 내어 산, 달, 바람, 비 등 자연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엄마는 작품을 보자마자 탄성을 자아내며 좋아하셨다.

“이거 너무 좋다. 보니까 마음이 편안해져.”


아빠도 마음에 드셨는지 작품 여러 개를 핸드폰으로 찍었다. (작품 사진 촬영을 허락하는 미술관이었다.) 아빠는 전시실 제일 안쪽 벽면에 걸린 대형 작품으로 갔다. 푸르른 산 위에 둥근 달이 휘영청 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작품을 오래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작품 앞에 놓인 원목 스툴 의자에 작품을 배경으로 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열심히 달려온 인생, 나 이제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커다란 산은 아빠를 품어주며 대답하는 듯했다.

‘그럼. 그동안 수고 많았네.’

그림 속 환한 보름달이 아빠를 비추고 있었다. 아빠가 그 자리에 앉아서 작품이 완성된 느낌이었다.


전시를 다 본 후 우리는 미술관 정원으로 가서 데크에 놓인 탁자에 둘러앉았다. 아이는 나에게 연필을 달라고 하더니 미술관 팜플렛 위에 그림을 그렸고, 부모님은 미술관 주위의 북한산 자락과 마을 풍경을 둘러보셨다.

“여기가 공짜라고? 좋다. 앞으로 전철 타고 다니면서 이런 데 구경 다니면 되겠네. 여보, 우리 그러자구요.”

“좋지!”


아빠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가 그림 속에 담아 보던 지나온 시간들의 이야기를 아빠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졌다.

오늘은 미술관 가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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