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Feb 14. 2021

시와 교실

시의 언어로 말하는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시를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준다. 읽은 후에는 시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나눈다. 시에서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문장수집가’라는 노트에 적는다. 이것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이면 우리반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작은 의식(ritual)이다.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주게 된 것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학교에 와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어 친구들, 선생님의 온전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이들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에 나오는 날만큼은 뭔가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시’였다. 


어느 날 나는 아침독서 시간에 한정원의 <시와 산책>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책에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 ‘기차에서 내리며’ 일부가 실렸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시에 담긴 의미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시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시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어 보았다. 아이들은 ‘내 마음은 이 우주보다 조금 크다.’라는 문장이 좋다며 이것을 ‘문장수집가’ 노트에 적자고 했다. 그동안 시를 고를 때 아이들이 ‘과연 이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었는데 이 일 이후로 나는 시 고르는 일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전날 서점에서 사 온 시집을 꺼내 잠깐 훑어보고 느낌이 좋은 시를 골라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시를 꾸준히 읽어보니 아이들은 시를 머리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시를 느낀다. 시의 낯선 시각을 어려워하기보다 새롭고 신선한 재미로 받아들인다. 


하루는 출근길에 담쟁이를 보고 도종환의 시 ‘담쟁이’를 읽어주었다. 뜯어온 담쟁이 잎 하나를 보여주며 시를 읽었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읽는데 마치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얘들아. 너희 담쟁이 봤니? 우리 학교 정문 앞 담벼락에도 있잖아. 엄청 많은 담쟁이 잎들이 높은 담을 가득 메우고 있어. 그것들이 모두 희망이었다니! 우리에겐 희망이 그렇게 많은 거야. 얘들아. 코로나라는 절망의 벽을 우리 함께 푸르게 덮자.”

우리는 담쟁이를 봤던 경험도 얘기하고, 코로나를 어떻게 이겨낼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코로나가 곧 끝날 것 같다는 희망적인 결론을 내렸다. 

“얘들아. 우리 그럼 직접 담쟁이를 보러 갈까?”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앞 담벼락으로 갔다. 아이들은 높은 벽의 끝이 어딘지 올려다보고, 담쟁이 잎이 얼마나 많은지도 세어보았다.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담쟁이 잎이 물들어서 점점 붉은 희망이 돼가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같이 웃었다. 우리들의 웃음 속에 희망이 들어있었다.


교실 속에 시가 들어오자 아이들은 달라졌다. 

“선생님, 우리반에서는 시의 냄새가 나요.”, “선생님이 지금 뭐하고 계신 줄 아세요? 희망을 노래하고 있어요.”, “선생님. 오늘 하늘 보셨어요? 완전 파랗고 예뻐요. 선생님한테 선물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시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책이 아닌 일상의 대화에서 시의 언어를 듣게 되는 순간은 경이롭고 찬란했다. 


시를 읽어주는 일은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좋았다. 혼자 눈으로 읽는 시와 아이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 시는 달랐다. 시가 더 생생하고 뜨겁게 와닿았다. 그리고 이 교실 안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떤 배움이 이루어져야 하는지가 분명해졌다.


지치고 어려운 시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눈과 마음은 아름다움과 희망을 향해야 한다. 특히 교실에서는 그래야 한다. 2021년 아침도 나는 시를 읽고 수업을 시작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