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고 아이가 울상이 되어 들어왔다. 오자마자 가방 지퍼문을 열고 시험지를 꺼냈다.
“많이 틀렸어요.”
수학 단원평가가 있던 날이었다. 평소 시험을 보면 한두 개씩 틀리고,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다 맞기도 했다. (이건 아이 표현이다)
시험을 보통 때보다 잘 본 날이면 아이는 시험을 못 본 척 연기를 하며 나를 놀래켜 주곤 했던 적이 있어 아이를 실눈으로 쳐다보며 “에이,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어제 집에서 아이와 모의시험을 봤었는데 100점을 받아 내심 이번 시험은 잘 볼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험지에 빨간색 작대기가 하나, 둘, 셋… 네 개가 그어진 걸 보고 사실임을 알았다. 그동안 다 맞진 못해도 4개까지 틀린 적은 없었다. 나는 시험지를 앞뒤로 넘겨보며 “시험이 어려웠던 거 아니야?” 물었더니 아이는 “100점 맞은 애들 많아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험지를 살펴보니 아이는 쉬운 문제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 나는 시험지를 내려놓지 못한 채,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아이는 5학년인데도 교과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대신 나와 함께 우공비 문제집을 풀며 공부한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는 못하고, 내가 날마다 풀어야 할 부분을 표시해놓으면 아이가 스스로 풀고 틀린 문제를 같이 다시 점검해보는 방식이다.
매일 체크리스트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곧잘 따라와 줘서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현행을 탄탄하게 밟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기본적인 문제가 나오는 단원평가에서 낮은 성적을 받아오자 지금 아이와 하고 있는 학습법이 부족한 건 아닌지, 아이의 학습력이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몰려왔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도 다니고, 선행 학습도 하는데 우리 아이는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속상해하는 아이를 위로하고 싶어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고민 끝에 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엄마도 시험 못 본 적 많아. 과학 시험에서 30점 받은 적도 있어.“
그러자 아이는 놀라워하며 말했다.
“네?? 아, 이제야 알겠네. 내가 과학 시간에 왜 이해가 잘 안 됐는지. 그게 유전자 때문이었구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의 실패 경험을 통해 아이를 위로하려 했던 건데, 아이는 몰랐던 엄마의 흑역사를 알게 되자 놀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도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아이는 이날 꽤 긴 시간 동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집중하며 수학 공부를 했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빨리 후딱 해치워버리듯 공부하려 했는데, 달라진 모습이었다. 엄마의 잔소리보다 낮은 시험 점수가 아이의 학습 집중력과 의지를 높이는 데 더 효과가 있었다. 역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단원평가 점수 하나에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우리 부부가 아이 100일 때 썼던 편지가 있다. "엄마, 아빠의 여덟 가지 약속"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잘 못 하고 느리더라도 끝까지 믿고 기다려줄게’라는 문장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수학 단원평가를 조금 못 봤다고 조바심을 내며 아이의 수학 학습에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걱정했다.
앞으로 아이는 수많은 시험을 치를 것이고, 기대보다 시험을 잘 못 보고 올 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점수 하나에 흔들리는 엄마 말고 아이의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이면서 "그럴 때도 있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엄마이고 싶다. 유창한 말로 이것저것 많이 조언 하기보다는 푸근하게 대하며 든든한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는 엄마.
얼마 전 아이는 마지막 단원 평가를 봤다. 이번에는 100점이었다. 시험지를 보니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확인하며 신중하게 풀었다는 흔적이 보였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아이는 노력했다. 다행히도 그 노력이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고 감사했다.
아이가 어떤 시험지를 들고 오든, 꼬물거리던 갓난아기 시절의 약속을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