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f & Frieze Seoul 2022 소고

당신이 아트 페어에서 찾고 싶은 것은?

by 해인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았던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프리즈 서울(20개국, 118개 갤러리 참가)은 과연 키아프(Kiaf) (20개국, 164개 갤러리 참가)를 잠식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이 아시아 아트 마켓의 허브로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인가. 거래 실적만 본다면 성적은 좋은 편이다. 굵직한 큰손들이 경기에 아랑곳없이 ‘사자’에 나섰고, 뮤지엄과 딜러들도 ‘매수’에 주저함을 보이지 않았다. VIP 관람일 첫날, 초반에 ‘사자’ 분위기가 열중되는 아트 바젤 같은 큰 아트 페어와 비교해선 좀 더 ‘긴’ 구매 사이클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아무튼 프리즈 때문에 국내 시장은 망할 것이라는 두려는 일단 ‘넣어두셔도 좋다’는 게 분위기다.


정말 그럴까?


키아프는 2002년부터 시작된 국제 아트 페어다. 예술 시장의 부침에 따라 업&다운이 있었지만 국내 최대 글로벌 아트 페어로 자리 잡았다. 프리즈와 5년 동안 공동 개최 결정에 따라 올해 절치부심해 준비한 키아프에 관람객은 말로만 듣던 프리즈를 ‘직관’하고자 하는 국내외 관람객과 컬렉터 때문에 조금 한산한(?) 경향을 보였다. 한국 미술에 애정이 많은 관람객조차도 일단은 3층에서 열리는 프리즈부터 보고 1층 키아프 장으로 내려오는 걸 택했다. 덕분에 키아프 장은 발 디딜 틈 없는 프리즈 장보다 한결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생기기도.


내로라하는 동시대 글로벌 작가들의 그림을 아트 페어에서 만나는 건 비엔날레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묘미를 준다. 나는 고대하던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커다란 캔버스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보고 갤러리스트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엔 아무나 주지 않는(?) 도록까지 챙겨 받는 호사를 누렸다. 집에 가지고 있던 전시 포스터는 이제 그를 추억할 수 있는 고해상 사진과 도록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지경. 수억 원을 호가하는 그의 그림은 그림의 떡이지만 그래도 가격을 묻고 그의 다음 전시가 열리는 도시와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걸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무형의 만족감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윈도우 캔버스'라 불리는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작업에는 공간 너머를 상상하는 그의 시각이 담겨있다.


진작부터 BMW와 컬래버레이션을 준비하며 아트카를 선보인 제프 쿤스와 수천 마리의 나비를 죽여 만든 데미안 허스트 앞의 작품 앞에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은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어댔다. 조그만 모나리자 앞에 운집한 사람들처럼.


키아프에도 스타가 없는 건 아니다. 어디를 가나 박서보가 발에 챈다. 박서보의 작품은 가능하기만 하다면 어떤 갤러리에서도 내놓고 싶은 작품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작가라는 타이틀보다 한국에서 ‘비싸게’ 팔리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게 벽에 박서보 작품을 가능한 한 많이 달고 싶어 하는 이유겠지. 키아프와 프리즈에서 모두 가장 인상적인 이배의 작품을 보며 더 많은 헤비급 선수들이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프리즈에서 발견한 나의 선수들 중에 단연 발군은 오스카 뮤릴로(Oscar Murillo)이다. 콜롬비아 출신, 런던에 본거지를 둔 30대 중반의 전투적인 화가. 캔버스를 뚫을 것 같은 에너지에 압도되어 한참을 붙박이처럼 서 있었는데, 어느 다른 모퉁이에서 전혀 다른 그의 그림에 다시 붙잡혔다. 그림 옆 작가 이름을 확인한 순간, 운명처럼 이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이에 대한 이력을 파고 또 팠다. 11살에 경제적으로 무너져가는 콜롬비아에서 빠져나와 가족들과 함께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런던으로 이주했다. 이민자가 겪었을 어려움은 상상하는 그대로다. 어찌어찌하여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는 왕립예술학교에 들어갔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에서 2019년 터너상을 받기까지 그의 인생은 그림만큼이나 다이내믹하다. 전업예술가가 되었지만 돈이 없었던 그는 가르치는 일 대신 유리창 청소를 택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9시까지 일하면 온종일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그 일이 그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스스로 ‘restless spirit’이라고 명명하는 그는 계급과 사회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흐트러진 캔버스 천과 다양한 미디엄을 통해 예술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공유한다. 나는 그의 그림을 사는 대신 David Zwirner 갤러리에서 낸 그의 책 구매 버튼을 눌렀다.


Oscar Murillo, manifestation (detail), 2019




다시 질문은 ‘예술은 무엇인가?’


이번 페어에 나온 수많은 작가 중에 내가 유독 오스카 뮤릴로에 빠진 것은 그가 이민자의 아들로서 계급과 사회, 정치적 문제를 정면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은 아니다. 일단은 그의 그림에 끌렸고, 그 끌린 이유를 더듬어 보니 발견한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 태도에 감응했기 때문이다.


보통 예술은 그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만든 사람과 그 작품을 둘러싼 배경보다 그 작품이 주는 미학적 효과를 더 중시하는 의견이다. 얼마간 동의한다. 작품이 주는 임팩트와 아우라가 없다면 굳이 그 작품을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심미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라면 굳이 꼭 예술일 필요는 없다. 얼마나 훌륭한 장식품들이 많은가. 예술작품을 장식품과 동일시한다면 그 또한 예술품을 대하는 한 가지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작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단지 심미적 만족뿐만 아니라 지적인 감응을 포함한다. 그 작품이 어떤 배경과 의도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맥락 속에 존재하는지. 그래서 예술사가 중요하고 해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예술사는 누가 기록하는가. 대부분은 주류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예술사를 기록한다. 뮤릴로는 예술사를 전공했지만 ‘역사는 역사일 뿐, 자신에게 허용되거나 허용되지 않은 것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구축하기(history is just history, let me forge my own path ignoring what is allowed or not allowed)’로 작정했다.


우리가 일컫는 ‘예술사’는 ‘서양예술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시아 또는 영미권 외 권역의 예술사는 인류학적 해석 또는 민속학적 영역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앤디 워홀의 작품에서 심미적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가 아무리 현대 사회의 복제를 예술적 주제로 삼은 천재일지라도. 아무리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이 느끼는 심미적 만족과 지적인 감응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모두 통합해 뛰어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가격’이다.


가격이 높으면 아무리 깨진 픽셀 조각이라고 하더라도, 상어를 박제했든, 나비를 학살했든, 단번에 위대한 작품 ‘반열’에 든다. 그 가격이라고 하는 것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한통속이 되어 작정을 하고 올렸든 중요치 않다.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생존 작가로는 가장 높은 NFT작품 판매 가격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비플(Beeple)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는 8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는 사실만 보도되었을 뿐, 그 5천 개의 그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거기에는 트럼프 조의 정치적 풍자와 미국 백인 중산층 남자들이 남용하는 그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과연 우리가 비플(마이클 윙켈만)의 그림을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더러 일어나지만 ‘가격’ 논의 앞에선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무슨 소리하는 거요?
아트 페어는 작품을 사고파는 곳인데 ‘가격’이 최고지


제프 쿤스는 일론 머스크와 함께 달에다가 자신의 작품을 가져갈 예정이다. 페로탱이 솔로 부스를 마련해 전폭적으로 판매에 열을 올린 타바레스 스트라찬(Tavares Strachan)은 우주에 대한 열정이 ‘찐 열정’인 작가다. 북극에 가서 얼음을 4.5톤 실어오고, 러시아에 가서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고, 직접 연구소를 차려 우주 역사를 연구한다.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해골바가지는 설혹 그 작품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온전히 제작비만으로도 작품 가격을 너끈히 건지고도 남는다. 그들의 스케일과 기획력과 공모(?) 능력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여전히 나는 그런 작품들에 감응할 수가 없다.

페로탱 갤러리 솔로 부스에 걸린 타바레스 스트라찬의 작품들


유사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정의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예술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지금처럼 상업과 자본이 전 세계를 점령한 때 예술과 자본의 경계가 흐릿해진 적도 없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작품이 무엇을 폭로하고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환기하는가일 것이다. 예술의 본령은 우리가 닫힌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고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접점이니까.


그래서 중요하다. 당신이 무엇에 감응할 것인지는. 당신의 감응이 오늘의 예술을 규정하고, 나아가 내일의 예술의 지형을 바꿀 테니까.



그 외 프리즈 & 키아프에서 내가 주목한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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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ller Cameron

어째 이상하게 끌린다 싶으면 런던 베이스 작가들이 많다. 스필러는 엄마 카메론과 공동 작업을 해서 이름에 Spiller + Cameron이라고 표기한다. 신화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한 엄마의 영향으로 모든 작품들의 이름이 그리스 신화에서 온 명명이다. 젊은 작가인데 아직 어딘가에서 뚜렷하게 상을 받은 이력이 없어 가격은 상당히 착한 편이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싶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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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hoon Stark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건축을 전공한 젊은 작가. 작품들이 공간을 구축하는 것처럼 쌓아 올린 느낌이 드는데 아이처럼 천진하게 기분을 환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Lumi Kuke는 하와이어로 ‘키친’이라는 뜻. Salt your taste라는 프로젝트명처럼 자유로운 지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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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attara Watts

57년생.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미국 작가다. 이상하게도 나는 지역이나 자신의 정체성에 특이한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석처럼 끌리는 경향이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검색을 해도 뭔가 모를 힘에 이끌려 뒤져보면 늘 그런 식이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경향?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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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e Ishikawa

맘에 들었던 작가 중 유일한 여성작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화두는 '여성'이라고 하는데 아트 페어에서 여성 작가를 만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여성이어서 좋아했던 건 아니고 조형과 입체적 느낌이 좋아서 알아봤더니 여성 작가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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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Green

2003년 작고한 영국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을 읽을 때처럼(트레버는 아일랜드인이지만..,) 뭔가 선적인 느낌이 뭔지 모르게 겸손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기법적으로 가장 오래 들여다봤던,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었던 그의 나이프와 붓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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