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에게 생긴 여백

아이들 곁에서 한 걸음 느리게

by 풀레터

아이들이 어릴 땐 하루가 모자랐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웃기고, 달래고, 또다시 밥 먹이고.

하루가 휘몰아치듯 지나가고, 아이들이 내 팔을 베고 누워 잠들면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바빴던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고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다.

옷도 혼자 고르고, 학교 준비도 제법 익숙하게 해낸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꾸만, 여백이 생긴다.


처음엔 그 여백이 낯설었다.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따라왔다.

그래서 괜히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이미 정리된 서랍을 또 열어보기도 했다.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하나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농사는 함께하는 게 좋은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선뜻 반기진 않았다.


요즘은 그 여백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노력한다.

텃밭을 돌보는 시간, 따뜻한 국을 끓이며 국물의 깊이를 느껴보는 시간, 믹스커피 한 잔 들고 부엌 창가에 멍하니 앉아 집 앞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이런 순간들이, 예전에는 없었던 ‘나만의 시간’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은 점점 자기 삶의 중심으로 걸어가고, 나는 그 곁에서 천천히 걸음을 늦추고 있다.

여전히 밥을 짓고, 걱정하고, 웃고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나를 위한 숨구멍 같은 여백이 있다.


언젠가 그 여백이 아주 넓어져 텅 빈 식탁이 낯설게 느껴지는 날도 오겠지.

아이들이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는 날이 오면 그땐 또 어떤 마음일까, 문득 상상해 본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느슨하고, 조금 여유로운 이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지금의 이 여백조차 언젠가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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