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말을 길게 해 보겠습니다)
우울할 때 보면 기분 좋아지는 영화들 중에 나에게 있어 단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교육방송 명화극장에 자주 나오는 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무려 1965년 영화로 주인공 마리아 수녀로 나와 상큼한 매력을 뿜어내던 줄리 앤드류스가 이젠 할머니 역 전문 배우가 되었을 정도이지만 지금 봐도 세련됨이 남아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마리아가 트라프 가의 7남매에게 커튼으로 옷을 해 입히는 부분이다. 밖에서 뛰놀다 보면 옷을 더럽히기 때문에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마리아가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이다. 귀족의 체면 때문에 점잖게만 행동해야 했던 아이들은 커튼 옷을 입고 본격적으로 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들판과 산을 뛰어다닌다. 영화 속 아이들이 알프스의 푸른 하늘 아래 편한 옷을 입고 즐겁게 뛰놀며 “도레미송”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가 반세기 넘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가을, 일 년에 딱 두 번 오는 ‘소풍’의 시즌이다. 소풍 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장면처럼 즐겁게 노래 부르며 자연에서 뛰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보일 법도 한데, 대한민국에선 어찌 된 일인지 그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대신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소풍지는 각종 ‘관’이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역사관... 실제로 몇 년 전, 다니던 직장 앞에 있던 역사박물관에 산책을 나갔을 때, 학교에서 단체로 온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난 일이 있다. “너네 학교에서 다 같이 왔니?”하고 묻자 “네~ 학교에서 소풍 왔어요!” 하고 합창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즐거워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다가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흙 위에서 뛰놀다 넘어져 “으앙, 지지!” 하고 울던 어떤 꼬마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이들처럼 탁 트인 들과 하늘을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편히 뛰놀 수 있는 소풍지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소풍’은 ‘바람 쐰다’라는 어원에서 보듯 원래 자연에서 뛰놀고 휴식을 취하는 의미가 큰 행사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쉬려는 일 조차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야외에 힘들여 나온 것만큼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게 해야 하고, 겪게 해야 한다는 강박증. 소풍으로 허락된 하루의 짧은 시간마저도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느껴져 씁쓸한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 그 하나하나에 부여될 명분과 의미가 없다면 쓸모없는 일, 하지 말아야 될 일이 되어 버렸다. 회복의 의미가 없는 휴식 즉,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휴식을 취하는 것은 죄악시되고, 역시 비슷한 의미에서 직업 없이 노는 청년 장년층은 인간도 아니라며 경멸받는다.
인터넷 플래시 게임 증 ‘강아지를 쏘지 마세요’라는 이름의 게임이 있다.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왼쪽 화면에서 반대쪽 화면으로 강아지 캐릭터가 지나갈 때까지, 중간중간 클릭 유도를 위한 검은 화면이 나오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저 모든 스테이지를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다. 하지만 기다림과 여유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면을 클릭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한다. 빠름과 생산성으로 무장한 자본주의의 총아가 현대인들이고 사회에서도 이를 권장하기 일쑤지만 그 와중에도 모두가 여유와 휴식을 찾는다.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된 ‘한강 멍 때리기 대회’ 역시 이러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모 광고 카피가 더욱 깊숙이 와 박히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