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둑

조국 사태와 최순실

by 바다의별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하고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크다'라고 인식되는 것에 대한 호감은 물리적 존재와 추상적 존재를 가리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大)'라는 접두사가 붙는 말들에는 호감과 숭상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악(惡)의 크고 작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소악(小惡)'에는 쉽게 분노하고 때로는 일치단결에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거악(巨惡)'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일례로 '살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가장 큰 죄악이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쁘다'라고 인지하는 범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잭 더 리퍼', 미국의 '테드 번디' 등 인류사에 남을만한 '큰' 범죄자들은 일명 '레전드', '전설'로 숭상받으며 팬클럽까지 보유하고 있다.


굳이 살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살인보다는 작은 죄'로 인식되는 절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남의 물건을 훔쳐 피해를 끼쳤다는데 그 크고 작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대도(大盜)'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은근한 경외심이 존재함은 사실인 듯하다. 대한민국에는 이러한 별호가 붙은 실존인물이 존재하는데 '대도 조세형'이 바로 그다. 강남의 내로라하는 부잣집과 국회의원의 집 등을 털고, 자신은 '가난한 사람의 집은 털지 않으며 훔친 돈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을 고수해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범죄자 조세형. 그는 신묘한 절도 실력과 의로운(?) 원칙에 말미암아 보안업체의 자문위원으로 모셔지기도 하는 등 절도계의 큰 사람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6월, 고희의 나이에 돈 몇만 원을 훔쳐 다시 감옥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한 그가 좀도둑으로서 초라한 말년을 맞은 모습은 결국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대중에게 묘한 소회를 남겼다.


우리 사회의 큰 도둑이 비단 조세형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역사를 배우고 쏟아지는 미디어의 정보들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자신의 경영권 상속을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는 기업의 총수, 자신의 위치를 남용해 국가사업을 이용하고 개인 재산을 불린 대통령, 더 극단적으로는 실적을 위해 애꿎은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 사형을 시킨 일련의 일들은 이제 너무 많이 회자된 탓에 식상하기 그지없다. 조세형의 본질이 도둑이라는 사실에는 모두가 쉽게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거악의 도둑질과 날강도짓에 대해서는 희한하게도 사람들의 의견이 갈린다. 일련의 사건들이 거대 담론화 되어서인지 혹은 일을 저지른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너무 커서인지 확실히 예단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커다란 나쁜 일들을 쉽게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다. 아마도 규모가 큰 일들에는 수많은 작은 이해관계들이 끼어들어 본질을 압도하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와 더불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재평가하려는 목소리가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당장 쏟아지는 초록창 뉴스란에서 조국 장관 관련한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런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조국 장관의 딸이 정유라와 다를게 뭐냐는 둥 조국 장관의 죄가 최순실 급이라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최순실 씨가 왜 유죄판결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이런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정말 이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맞기는 한지 놀라움이 들 따름이다. 이런 흐름(?)에 편승한 건지 급기야 최순실 씨가 감옥에서 "나는 태블릿 PC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이를 보도한 손석희 jtbc 사장을 고소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을 대단한 선언을 한 양 보도하는 모습까지 나왔다.


조국 장관의 죄의 유무는 우선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반반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 경중을 최순실에 빗대는 일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두 달여의 시간 동안 검찰이 털고 털어낸 기소 가능성 있는 혐의라는 게 '사문서 위조', '공직자 윤리법 위반' 정도인데 최순실의 경우 모든 국민이 듣고 보았듯 '뇌물수수', '배임과 횡령', '직권남용' 등등 이미 확정된 판결만 해도 두 손에 꼽을 정도다. 또한 법적 혐의 외에도 그의 뉴스가 처음 보도됐을 때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죄가 사회에 던졌던 엄청난 파장을 기억해 보라. 이 정도면 최순실 씨가 저지른 잘못의 규모에 압도되어 가치판단의 하향평준화와 더불어 집단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작은 도둑질에 쉽게 들끓고 분노하던 사람들이 큰 도둑질에 대해서는 왜 이다지도 쉽게 이해한다는 말을 던지는 것일까. 도둑질의 '악한'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그 무게에 주저앉지 않을 균형감각이 특히 필요한 때다. 적어도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원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무게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중심을 잡는 저울의 역할을 할 민주시민의 역할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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