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못해 미안해

#검찰개혁 #윤석열 총장 #쿨 몽둥이

by 바다의별

장면 하나.

"쿨병 걸린 것들은 쿨 몽둥이로 맞아야 해!"

몇 년 전 크게 히트를 쳤던 jtbc의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을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이 촌철살인에 고개를 절로 끄덕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랑에 쿨한 게 어딨냐고 부르짖던 이 예능 프로그램의 MC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찌질했던 연애사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열망이고 때로는 소유욕이 된다. 상대가 나를 더 봐줬으면 좋겠고,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 그도 나를 좋아했으면 따위의 감정이 물밀듯이 일어난다. 그러다 종래에 헤어지거나 하면 새벽 감성 폭발해 "자니?", "뭐해?" 따위의 카톡을 보내고 이불을 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나만 사랑에 작아졌던 것이 아니었구나. 설령 상대에게 찌질해 서툴다 욕할지언정 쿨함 따위는 내 사랑의 척도가 될 수 없었다.


장면 둘

"이명박 정권 때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나고요."

지난 18일 국감,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 한마디가 가져온 파장은 컸다. 역대 정권 중에 어느 정부가 그나마 중립을 보장한 정권이었냐는 이철희 의원의 질문에 나온 대답이었다.'대통령의 형과 동생을 구속할 때 별다른 정권의 관여가 없었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나온 이 대답에 대해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던 일명 닭장차의 행렬과 결혼식을 앞두고 수갑을 찬 mbc pd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음이 분명하다. 정권에 대해 비판적 언론과 일반인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속칭 미네르바 사건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과 더불어 일명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검찰의 지저분한 속사정을 까발렸던 정권이 바로 MB정권 아니었던가. 대검찰청에서는 뒤늦게 답변이 중단되어 의미가 왜곡되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대중의 놀라움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흔히 쿨함을 '멋있고', '스웩'있는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이 쿨함이 빛을 발하려면 '뜨거움'이 필연적이다. 뜨겁게 사유하거나 감정의 소비를 이루고 난 후 차갑게 식어야 온도의 변화가 의미가 있는 법. 일례로 연애할 때 그저 쿨하기만 하다면 그걸 어떻게 사랑한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에 열정이 동반되는 것은 만고불변의 사실이다. 또는 머리가 터지도록 세상에 대해 나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 뜨겁게 고민한 다음에 이성으로서 차갑게 식힌다면 그때 성취한 지혜나 지식은 단단할 수밖에 없다. 매사 쿨하게 사는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정이 전제되지 않은 쿨함은 그저 무관심의 다른 말이고 이성적임을 가장한 기만일 뿐이다.


윤석열 총장의 '쿨'함에 대한 인식은 그래서 무섭다. 그의 '쿨'은 검찰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였다. 검찰에 대한 무관심에의 종용. 그가 말하는 쿨함은 검찰에게 국민의 사랑과 관심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검찰이 국민에게 원하는 건 그저 노관심임을 증명한다. 검찰이 제 기능을 잘하든 못하든 그저 똑똑한 사람들의 집합이나 알아서 잘하겠거니 여기며 드라마에 흔히 나오듯 정의롭고 짱짱 센 검사님들이 '내 수사와 기소가 곧 정의'를 외치며 마음대로 가진 것을 휘두르도록 내버려 둬야만 검찰은 만족할 것인가. 적어도 '자유'와 '정의'를 사회가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쿨함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할 것이다. 검찰개혁을 외치며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뜨겁게 사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앞으로 검찰개혁 논의가 더 가속화될 이 정국에 더 뜨거워지면 뜨거워졌지 윤총장의 말처럼 쿨해져서는 안 될 말이다. 가수 UV의 철 지난 노랫말을 다시 흥얼거려 본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