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세상에서 가장 당당하게 멍 때릴 권리

방전된 당신에게 에릭 사티가 건네는 쉼표

by 티모

안녕? 지금 이 글, 혹시 침대에 누워 한 손으로 휴대폰 들고 보고 있어? 겨우 눈은 떴는데 몸은 천근만근이고 머릿속엔 '주말인데 뭐라도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의 짐이 슬며시 고개를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괜찮아. 평일 내내 밖에서 ‘E(외향인)’인 척 에너지를 쥐어짜며 사느라 네 배터리는 이미 방전된 상태잖아. 주말까지 굳이 갓생 살겠다고 너를 몰아붙이지 마. 오늘은 너랑 같이 침대 속에서 뒹굴며 "제발 나 좀 내버려 둬!"를 온몸으로 외쳐 줄 형을 모셔 왔어. 바로 뼛속까지 'I(내향인)'였던 작곡가, 에릭 사티 형이야.

사티 형은 자기 음악을 '가구 음악'이라고 불렀어. 식탁이나 의자처럼 그냥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존재하는 음악이라는 뜻이지. 한번은 연주회에서 사람들이 자기 음악에 집중하려고 하자 사티 형이 오히려 화를 내며 소리쳤대.

"제발 하던 대로 계속 떠들고 움직이세요! 그냥 배경처럼 저를 무시해 달라고요!"

평일 내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쓸모를 증명해야 했던 너에게 이 형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오늘만큼은 너도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방 안의 소파처럼, 창가의 햇살처럼, 가만히 배경이 되어보는 '무시당할 권리'를 누려 보라고 말이야. 그게 진짜 휴식의 시작이니까.


사티 형은 매일 똑같은 길을 아주 느릿느릿 걸었어. 누가 보면 멍하니 걷는 게 게을러 보였을지 모르지만 형에겐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마음을 비워 내는 소중한 시간이었거든. 주말마저 밀린 숙제를 하듯 바쁘게 살지 않아도 돼.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걷거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쓸모없는 시간이 네 영혼을 다시 숨 쉬게 할 거야.


사티 형이 남긴 곡 <짐노페디> 들어 본 적 있니? 선율이 화려하게 요동치지 않고 마치 공중에 붕 떠서 느릿느릿 유영하는 기분이 들어. 특별한 감정의 기복 없이 담담하게 이어지는 음표들을 듣고 있으면 사티 형이 옆에서 '아무 생각 안 해도 된다, 그냥 여기 가만히 있어도 충분하다'고 속삭여 주는 것 같아. 이 비어 있는 선율 사이사이로 네 마음이 쉴 수 있는 틈이 생겼으면 좋겠다.


사티 형은 평생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았어. 남들이 괴짜라고 불러도 "그래서 뭐?"라며 쿨하게 멍을 때렸지. 그러니까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하거나 미안해하지 마. 평일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달렸던 네 영혼한테 이 정도 쉼표는 줄 수 있잖아. 사티 형의 음악을 틀어 놓고 세상에서 가장 당당하고 편안하게 멍 때려 보자. 너는 그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니까.


오늘 하루, 네 마음이 사티의 음악처럼 고요하고 평안하길 바랄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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