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디좁은 길은 그 길대로 매력이 있고
넓은 도로를 걸을 때면 확 트인 시야에
더불어 마음도 열린다.
저 멀리 전광판에서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누군가 스트레칭을 하는 실루엣이 선명하다.
흰 바탕에 검은 의상인 탓에 두드러지게
시야에 잡힌 것 같다. 가까이 지나며
작품명을 확인해 보니 '이재이' 작가의
<중력과 가벼움>이다. 설치 미술로
두산아트센터나 리움미술관에서
익히 소개된 작으로 이번에는
신라스테이 벽면 스크린에 여럿 다른 작가의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번갈아 소개되고 있었다.
가로, 세로 12.2M x 16.94M
광고 스크린에서 만나는 무용.
그저 동선이 바른 꼿꼿한 자세를 보았을 뿐인데도
대로변에서 확 트인 기분을 느낄 때와 비슷하게
마음이 열리는 효과가 있다.
중력을 거스르기에 앞서
그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조화를 이뤄내 깃털처럼 가볍게 보이는 이들.
무용을 보고 있으면 무겁고 지루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참게 된다.
나로선 익히 편애하는 어떤 연극과 무용이 저기
투사되면 어떨까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바로 몇 분 뒤 스타필드에서
호텔 벽면, 그보다는 작지만
거대한 책방 작은 스크린 속 잡지에서
그들을 우연히 만났다.
<공상물리적춤>의 한 장면. 이때 즈즈즈즈즈 무용수들이
몸으로 소리를 내는데
화면 안에서 음성 서비스가 되는 듯 했다.
E - Book이지만 단면적인 사진과 글만 제공됐다.
이 작품은 인간의 기본적인 달리기가
어떻게 춤으로 관객과 닿게 되는지
그 경로를 엿볼 수 있는데,
기초가 단단한 움직임이 인위적이고 화려한 것을
뛰어넘는 역설적인 풍경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프로란 기본에 충실하고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데에서 복잡다단한 진실을
마주칠 수 있다는 진리 같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달리기춤이 주는 감흥 여파가 꽤 길고 깊다.
무용수들이 차례로 연달아 등장해
각자의 폼대로 앞으로 뛰고 뒤로도 뛰고
혼자서도 뛰고 함께도 뛰고
달리는 형태의 여러 자취를 그려낸다.
한번 오래 달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단시간 에너지를 쏟는, 쉼없는 달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경험하는데
이들은 거침없이 몇 분 가량을
몰아서 달리고 춤을 만든다. 그리고 같이 헉헉대며 숨을 고른다.
무대에서 보면 그 호흡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 춤에 즉각 매료되고 만다. 아이들은 따라 하고.
관람 직후 헬스장에서조차 사람들의 달리기 포즈가 저마다
하나의 춤처럼, 각자가 품고 있는 예술적 품새로
느껴지기도 한다. <공상물리적춤>에는
각종 아름답고 개성있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달리기는
다른 연극이나 무용으로도 콜라보되어 옮겨갔다.
대학로와 서강대 소극장에서 강동의 중극장에서
배우들이, 전문 무용수들이
달리기춤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편해
장면을 만들어냈는데,
여러 명이 할수록 오묘하고 강한 힘이 전달됐다.
그래서인지, 달리기 행사나 축제를 보면
일반인들이 예전 월드컵 때 김수로 꼭짓점 댄스처럼
달리기춤을 배워 보면 어떨까,
누구나 달리기춤 하나씩은 적금처럼 품고 사는 것이다.
그럼 마치 주성치 영화 속 숨어사는 고수들처럼
직장에서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그날밤 자신의 근처 영역에서 달리기춤으로 푸는 것이다.
억눌린 어떤 것들도 달리기춤이 이어지는 장소에 가서
없애고 오는 것.
달리기춤의 최고수들 사진을 접하곤
서점 밖으로 나가니 언택트 마라톤 중계가 열리고
있었다. 달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기술진과 행사
관계진들만 있는 자리인데,
같이 달리진 않아도 지구 어느 편에서든
달리며 자신의 영상을 쏘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코로나시대에 변해 가는 모습들.
달리기는 어쨌든 계속 되고 있었다.
벽면 스트레칭에서 스크린 달리기로
한두 시간 동안 길에서 만난 움직임들을 보며
익숙한 무용이 떠올랐고,
또 어떻게든 공연도 다른 풍경들로 흘러갈 테고
그 변한 모습들이
더 쉽사리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노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서
조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