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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Nov 27. 2023

올케언니에게 살림을 배웠다

나는 살림하는 법을 올케언니한테 배웠다.

누군가 각 잡고 널 가르쳐줄게 해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그냥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배우게 되는 게 훨씬 크다. 엄마나 친정언니에게 배운 점도 물론 많이 있지만, 내가 처음 어른으로써 며느리로서 해야 할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본받게 된 건 올케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언니는 태어난 해로 따지면 나랑 쥐띠 동갑이지만, 7살에 학교를 들어가서 학년으로 따지면 나보다 한해 위이니 언니가 맞다. 하지만, 나랑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나이 많은 큰 언니 같다.


오빠는 나보다 4살 많은 우리 집 장남인데, 늘 듬직하고 믿음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 편이다. 올케언니랑 연애할 당시에도 한 번도 가족들에게 누구를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 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오빠방 책상에서 여자 사진이 들어가 있는 작은 액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빠 성격에 액자를 사서 가족들에게 보란 듯이 방에다 갖다 두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여자친구가 자신의 사진을 넣어 선물해 주며 책상에 꼭 올려놓으라고 이야기했겠지 라며 우리끼리 짐작만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올케언니가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한 게 맞다고 ㅎㅎ)

오빠는 졸업하자마자 LG 화재에 면접을 봐서 합격을 해 대기업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 초년병 시절에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오던 친한 형이 안정적인 직장 있다는 점을 이용해 사기를 쳐서 , 오빠는 덜컥 회사 신용으로 보증서 버렸다. 그 바람에 당시 몇천만 원의 거금이 저당 잡혀 오빠 회사 월급에서 그 돈이 고스란히 빠져나가게 되었다. 당시 오빠는 본인의 실수를 자책하며 괴로워 제대로 회사를 다니기도 힘들어할 정도였다. 어느 날은 밤에 술 취해 벤치에 잠깐 누워있다 잠이 들어 양복 윗도리랑 지갑을 도둑맞고 아침에 걸어 들어온 적도 있다. 오빠 인생에 일평생 그런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겠는가..

나는 그때 우리 집에 드리웠던 그 어두운 먹구름이 평생 걷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옛날 일을 회상하는 글을 쓰는 걸 보면 정말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사람 좋은 우리 오빠는 15년 후 사기 친 그 형을 우연히 다시 난 적이 있는데 앉아서 이야기만 나누고 그냥 용서해줬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그런 사람의 변명을 들어주고 그럴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냥 오빠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 들어야지 어쩌겠는가?... 그래.. 15년 동안 우리랑 마주칠까 봐 발 뻗고 잤을 리가 없을 테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벌 받았을 거야.. 아마 속은 까맣게 타서 오래는 못 살 거야라고 믿으며...

오빠는 그 사건이 일어난 직 후에는 세상이 다 끝난 줄 알았을 테고, 당연히 당시 여자친구였던 올케언니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돈은 다시 벌면 된다고 오빠에게 힘을 주고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결혼하고도 한참 후에 전해 듣고 언니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정말 큰사람이구나 싶었다.


올케언니가 오빠와 결혼하고 처음 1년간아직 결혼도 안 한 시누이들까지 있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우리 집 2층에 월세를 줬던 2칸짜리 방을 신혼방으로 꾸며주고, 신혼살림을 차리게 했다. 올케언니는 신혼여행을 다녀와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된 첫날 아침 언니, 오빠 그리고 엄마까지 다 출근한 후, 집에 있던 나와 아버지를 위해 따로 아침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늘 아침 일찍 엄마가 일하러 가시고 바쁘셔서, 내 생전 그런 고급진 한상차림의 아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언니는 마치 중요한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새색시가 입는 초록색 저고리에 고운 다홍색 한복치마를 입고 하얀 무명 앞마를 두르고 나와 한복소매를 척 걷어 올리고는 하얀 쌀밥을 지었다. 그것도 치지지직 소리가 나는 압력솥으로.. (새색시의 한복 입은 아침 풍경은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언제 준비했는지 꼬막을 삶아서 간장양념을 곱게 올리고, 언니가 친정에서 가져온 청국장을 떠서 내가 여태 먹어본 적 없는 시원한 된장국을 만들어 내왔다. 밥은 찰지고 윤기가 났다. 아침부터 몇 가지 나물을 맛깔나게 무치고, 조기 한 마리도 뚝딱 구워 올린 것이 도대체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첫날 아침 새신랑도 아닌, 남편의 막내 여동생과 시아버지에게 올리는 밥상이라니...

나는 미안하면서도, 황송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는데, 그때 먹은 밥맛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 그 후로 나는 울 올케언니를 정말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정성스럽게 대해주면, 나도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언니의 음식솜씨는 늘 정갈하고 깔끔했다. 오빠네 놀러 가면 언니의 푸짐한 한식 실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언니는 늘 압력솥에다 갓 지은 밥을 해 먹는데 그런 영향으로 나도 결혼하고 나서는 언니처럼 저녁은 무조건 압력솥에다 갓 지은 밥을 해 먹고 있다. 평소 언니 요리는 잡채, 고등어조림, 해물탕, 파전 등 시골느낌 나는 한식 위주인데, 먹어보면 무조건 엄지 척 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언니가 집에서 샤부샤부를 해준 적이 있는데, 집에서도 그렇게 맛있고 푸짐한 샤부샤부를 해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지금까지도 겨울이면 자주 해 먹는 우리 집 특별메뉴가 되었다. 언니네 샤부샤부의 맛깔난 국물의 비법이 김치국물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어서 나도 샤부샤부를 할 땐 마지막에 김칫국물을 살짝 넣어서 감칠맛을 더한다.

월남쌈을 처음 먹어본 것도 바로 언니네에서였다. 색색깔 과일과 채소들을 일정한 길이로 단정하게 썰고, 고기는 양념해서 굽고, 볶은 버섯과 데친 새우도 함께 가지런히 커다란 접시에 올려두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언니가 하는 요리는 집에 가서 꼭 따라 하게 된다. 서울에서 온 동생들이 내가 둘째 임신 중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언니에게 배운 비장의 무기인 이쁜 월남쌈을 대접했더니 다들 감탄하고 너무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살림하고 요리하는 걸 하나하나 배웠다.


언니에게는 요리하는 법만 배운 게 아니다. 결혼한 며느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언니를 보며 간접적으로 많이 배웠다. 나도 모르게 시댁에 가면 올케언니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대하는 마음 씀씀이, 어른들을 대하는 바른 행동등.. 내가 시댁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 속에서 언니가 여지없이 떠오르고 언니는 이렇게 했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결혼을 하고 첫 신혼집을 구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곳은 우리가 처음 입주자로 들어가는 새 아파트여서 전체적인 집 청소가 필요했다. 청소업체에 맡겨도 되지만 그러기엔 부담이 되어, 나와 신랑이 직접 청소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무래도 엄마도 불러서 같이 청소해야 될 거 같다는 이야기를 올케언니에게 했다. 그랬더니, 언니는 대번에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혼을 내며 말했다.


"아가씨, 그런 일로 어머니를 부르면 안 되지. 아가씨가 살 집이니까 그 일은 둘이서 직접 해야 된다."


나는 딸이 엄마에게 이런 부탁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할까 서운하고 야속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상오는 아주머님 말씀이 맞다고.. 어머니가 고생하시니까 우리 둘이서 해보자고 달래주었다.

청소하러 가는 날, 신랑이랑 둘이서 이것저것 청소도구를 챙겨서 땀을 흘리며 기를 쓰고 청소를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올케언니가 오빠와 함께 청소도구를 잔뜩 가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올케언니는 내가 청소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이미 우리를 도와줄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자마자 바닥을 일일이 물걸레질로 청소해 주고, 오빠에게는 먼지 나는 큰 쓰레기들을 버리게 시켰다. 그리고 치약을 가지고 와서 하얀 싱크대를 더 하얗고 빛나게 닦아주었다. 올케언니는 엄마 성격에 우리 대신 두 손 걷어 부치고 모든 일을 다하실 거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고, 요즘 일하시느라 몸이 피곤한데 쉬는 날까지 청소하느라 고생하는 건 아니라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올케 언니보다 훨씬 부족했구나 하고 느껴져 나의 철없음에 반성했다. 그리고, 언니의 깊은 속뜻을 알고 나서는 괜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일이다.


올케언니에게 살림을 배웠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하는 모든 요리나 살림살이를 다 배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니가 살림하는 모습들을 눈여겨보고 자연스레 배움을 얻듯이 나도 결혼을 하면, 언니처럼 살림을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본격적으로 네이버 블로그의 수많은 살림의 고수들에게 양말 개는 법, 팬티 이쁘게 접는 법 따위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부터, 음식 소분하는 법, 살림살이에 필요한 용품이나 청소하는 법 등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운 걸로 따지자면 요리나 제빵부터 배울 수 있는 게 넘쳐나는 네이버 블로그가 사실 진짜 내 살림의 스승이기도 하다.



집에 좋은 사람이 든다는 건 참 복이다.

20년 넘게 언니랑 가족이 되어 살면서 한 번도 서로 인상 찌푸리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언니는 늘 나의 든든한 응원자이며, 나에게 지혜를 주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올케언니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시누이와 올케사이는 영원한 연적이라고 했던가? 

나에겐 영원한 내편 올케언니어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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