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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Nov 20. 2023

고양이의 보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파트에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늘 주택에 살았다. 다닥다닥 이웃들이 붙어 있는 다세대 주택부터 2층짜리 양옥집까지 다양한 주택에 살며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는 동네마다 쥐가 득실거렸다. 주택에 살면 겨울에 추운 것도 힘들지만, 쥐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너무 싫었다. 특히나 초등학교 3학년 때 2층집에서는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나타나는 쥐 때문에 괴로웠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 겁이 많던 나는 방과 후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쥐가 하수도로 쑥 들어가는 걸 목격하거나, 전깃줄 위를 영차영차 기어 올라가는 애들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신발을 신다가 뭔가 물컹하는 게 느껴졌는데 그 안에 쥐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걸 발견하고는 기함할 정도로 놀라서 나 죽어라고 운 적도 있다. 그 뒤로 신발을 신기 전 신발 속을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쥐다.


겁이 없어진 쥐들이 결국 우리 집 안방까지 침범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시고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오다. 

엄마가 데리고 왔던 그 아이는 첫인상에 점하나 없이 하얗기가 눈이 부시고 작지만 눈코입이 너무나 또렷했던 잘생긴 고양이었다. 엄마가 살이 많이 찌라고 "살찌나"라고 부르다가 나중엔 그냥 "지나"가 되었다. 엄마는 늘  "지나야~" 하며 우리가 먹고 남은 밥을 말아 생선이랑 주시곤 하셨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처음에는 지나를 무서워해서 만지지도 못했다. 동물을 좋아하고, 정 많은 울 언니는 지나를 너무 예뻐해서 학교를 다녀오면 늘 지나를 안고 다고, 나중엔 몸집이 언니보다 커질 때까지도 안고 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치다 깜짝 놀라기도 했다.

빛이 내리쬐는 날이면 우리 집 대청마루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 자던 지나는 참 이뻤다. 나는 지금까지도 나보다 이쁜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등을 쓰다듬어주면 갸르륵 댔다.

커가면서 지나는 우리 집에 사는 쥐들을 잡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쥐가 지나가면 발로 꾹 누르고는 헤롱헤롱하게 만든 다음 앞발로 이리저리 축구를 하며 가지고 놀았다. 몇 번 쥐가 도망치기는 했지만 지나는 잽싸게 낚아채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다음 날 일어나 보면 지나가 자던 곳에 어느새 쥐는 잡아먹혀 생쥐 꼬리만 깨끗하게 잘려서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지나는 신기하게 쥐를 먹기 시작하면서  꼬리를 남기는 버릇이 생겼다. 쥐들에게 보내는 경고 같은 것이었을까?

그 뒤부터 지나의 활약이 눈부시게 시작되었는데 밤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쥐를 잡아서 결국 온 동네 쥐를 멸절시켜 버려 깨끗해진 동네로 만들어준 기억이 난다. 지나가 온 이후로 우리 집에 쥐가 출몰하는 일이 없어지고, 밤마다 어두운 곳 어딘가에서 부스럭대던 소름 끼치는 소리들이 사라져서 지나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지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지나에게 고맙다고 수도 없이 말했을 텐데...

2층 주택에서 우리와 함께 몇 년을 살던 지나는 훌쩍 커서 언제부턴가 밤마다 울어대더니, 결국 집을 떠나 도둑고양이가 되었다. 갑자기 사라진 지나가 너무 보고 싶어 언니랑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떠난 지 한참 뒤 어둑한 저녁 집 앞 담벼락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 앞에 나타난 지나를 발견했는데, 하얀 지나뒤에 얼룩덜룩 무늬의 졸병 고양이들이 줄줄이 뒤따르며 사라졌다. 노을 진 하늘이 이뻤던 날.. 그게 지나를 본 마지막이었다.


개는 사람을 기억하고 고양이는 집을 기억한다고 자신의 집을 기억하고 찾아온 것일까?

쥐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우리를 확인해보고 싶었던 걸까? 

본인이 잘 살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걸까?

어쨌거나, 자기를 이뻐해 주던 사람들을 위해 밤마다 쥐들을 없애준 건 우리에 대한 지나의 보은으로 느껴진다. 지나를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 이후로 우리 자매는 더 이상 지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래동화 한 권을 읽어주다가 순간 아주 오래 전의 지나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꽃가마를 탄 고양이"라는 책이다.




옛날 옛날 아주 가난한 집진서방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길을 가다 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집에 데리고 오게 되었다. 아내는 우리가 먹을 밥도 없는데 어떻게 키울 거냐고 버리라고 하지만, 그 집 딸 연희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제발 키우게 해달라고 졸라서 그렇게 품어다 아픈 고양이에게 밥을 먹이고, 약까지 다려줘서 겨우겨우 살아나게 된다. 그런데, 고양이는 커서도 쥐 한 마리 잡을 줄 모르는 멍청한 고양이란 소리를 듣게 되고, 그 동네 쥐들은 고양이를 깔보고, 그 집 창고로 몰려들어 창고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느새 연희는 아리따운 처녀가 되어 결혼할 날짜를 잡아 놓았는데, 진서방은 딸이 결혼할 때 혼수로 마련해 갈 쌀들을 가지러 창고에 갔다가 그동안 모아둔  쌀가마니를 쥐들이 몽땅 갉아먹어 버린 것을 알고, 몸져누워 버리고 만다.

날 밤, 게으르게 누워만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어슬렁거리며 일어나더니 진 서방의 삼베 두건을 쓰고 곳간으로 가서 곡을 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우리 아버지가 가시다니~~" 하면서.. 

쥐들은 어느 집에 초상이 났나 하며 몰려들어 가보니, 고양이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절을 하라고 하지 않겠나? 고양이에게 아버지가 있었나 하며 쥐들이 넙죽넙죽 절을 하자, 고양이는 어디 빈손으로 초상집에 오느냐며 부조 쌀을 한 움큼씩 가져오라고 시킨다. 고양이의 소문이 온 동네 쥐들에게 퍼져 강 건너 옆마을 쥐들까지 문상을 오게 되어 연희네 곳간에는 밤이면 밤마다 쌀이 수북하게 쌓여가게 된다. 어느 날, 소문을 들은 커다란 대장 쥐도 문상을 오게 되었는데, 고양이는 옳거니 이때다 싶어 대장 쥐를 옴짝달싹 못하게 깔고 앉아 쥐들에게 호통을 친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내 눈앞에서 쌀을 훔치다가 들키면 다 잡아먹을 테다. 알겠느냐?

살고 싶으면 오늘 밤 안으로 마을 쥐를 모두 데리고 이 마을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가거라!"

대장 쥐는 살려달라 애원을 하며, 쥐들과 함께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모두 다 산으로 도망가버리고 만다.

다음날 연희는 곳간에 수북이 쌓인 쌀을 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진서방도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다.

연희가 시집가던 날, 연희의 꽃가마 뒤에 고양이를 실은 작은 꽃가마가 따라가고 있었다. 색동모자를 쓴 고양이가 꾸벅꾸벅 졸면서 말이다.





우리 지나도 밤마다 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저렇게 했을까 싶다.


"야~ 우리 주인이 너네들 너무 싫어해~

또 이 집에 오면 가만 안 둬~

여기 네 친구들 꼬리 보이지?

내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만들어줄 거야~

당장 이 동네를 떠나라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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