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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Jul 29. 2024

마당있는 집을 찾아서

집 이야기

잔디가 깔린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첫 아이를 가지고 나서부터 생긴 그 꿈은 아파트에 살면 살수록 강해졌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넘어져도 끄떡없는 폭신한 잔디를 찾아서 주말이면 푸르른 파크를 찾아다녔다. 당시에 내가 얼마나 그걸 원했었던지, 그때 적었던 수첩을 보면 내가 이루고 싶은 꿈에 "마당 있는 집에서 살기"가 떡하니 탑 5안에 들어가 있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 건지, 지금은 사방 천지가 잔디인 캐나다에 살게 되었다. 이제 내 집은 단독주택에다 마당도 있고, 잔디도 있다. 꿈을 이룬 건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2010년대 한국에서는 단독주택은 비싸고, 춥고, 유지비도 많이 드는 편이었다.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집을 짓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며 그런 전원주택에 산다는 건 비용이 너무 드는 일이었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맘에 해운대 주변의 몇몇 오래된 주택들을 구경해보기도 했지만, 선택지가 너무 적었고, 대대적인 공사가 아니면 들어가기 힘든 곳 뿐이었다. 집 근처의 주변환경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가장 접근성이 좋은 아파트에 계속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어느 날 TV를 보다 우연히 한 건축가와 건축기자가 만나,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으로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콩집 프로젝트를 하게 된 다큐를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그 후로 내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아닌 마당 있는 주택에 살고 싶었던(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땅을 사서 그 땅에 같이 집을 짓고 마당을 공유하고 사는 이야기였다.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각자 1억 2000씩, 다 합해도 3억이면 가능한 마당 있는 목조 단독주택이었다(2011년 시세). 게다가 아파트보다 훨씬 따뜻하고, 혼자가 아닌 둘이서 부담하니 경제적이며 무엇보다 이쁜 마당을 가질 수 있다는 큰 매리트가 있었다. 당장에 그 건축가가 썼던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을 사서 정독하고, 내 꿈을 실현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밤새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

이현욱 건축가가 썼던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은 당시 한국에 땅콩집 열풍을 일으켰다. 캐나다식 목조주택을 가져와 설계 시공하며, 가장 친환경적이자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단독주택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다. 나처럼 주택에 살고 싶어도 오래된 낡은 집을 개조하기가 만만치 않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고 해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사는 사람들에게 뭔가 해결점을 제시해 준 셈이었다.

영상과 책으로 본 땅콩집의 내부구조와 목조주택의 장점들, 그리고 아담한 잔디가 깔린 마당 있는 2층 단독주택을 보는 순간 드디어 내가 원했던 집을 만난 것 같아 이거다 싶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를 팔면 이런 작은 마당 있는 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건가?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이분들처럼 함께 땅을 사서 땅콩집을 지어보는 것에 관심 있어 하는 지인 한 명과 함께 한번 실행해 보자며 땅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내게 맞는 땅을 고르는 것에 대한 어려움, 경험부재와 익숙지 않은 절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주택뿐 아니라 주변까지 고려했을 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사항들에 부딪히며 현실은 쉬운 것이 아니었구나 하며 조용히 접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무작정 우리끼리 시도해 보려니 잘 되지 않을 수밖에. 서울처럼 땅콩주택단지가 생겼다면 바로 분양받았을 텐데, 부산에는 그런 곳도 전무했다.


결국 단독주택에 대한 원대한 꿈은 접게 되었다. 그때 차선으로 선택했던 곳이 정원 딸린 1층 아파트였다. 당시, 친언니네가 사는 아파트 단지 1층집들은 약간의 정원이 딸려 있었는데 아이 셋을 낳은 직후인 우리에게는 그곳이 최선인 것 같아 해운대에서 김해까지 이사를 감행했었다.

정원의 크기는 작았지만, 열매가 실한 커다란 매실나무가 있었고 뭘 키워도 잘 크는 텃밭이 있는 마당이었다. 아침밥만 먹으면 세 아이가 거실 베란다로 나있는 정원으로 나가 흙놀이를 하고, 방울토마토를 따먹고, 물조리개로 텃밭에 물을 주며 놀았다. 매실을 따서 처음으로 매실청도 담가보았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좋은 놀이터가 생긴거 같아 행복했다. 그렇게 마당 가진 것에 설레어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파트 상층에서 음식물을 담은 쓰레기봉투가 정원계단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이사 온지 한달도 안되 일어난 일이다. 머리가 노래졌다. 그 뒤로 몇 번 더 그런일이 생기자 다시는 정원에 나갈 맘이 질 않았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끔찍한 경험이었다. 신고해도 몇 층에서 그랬는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 뒤로는 슬프지만 마당과 맘속으로 안녕을 고했다.


 곳 1층 아파트에서 2년을 살다가 우리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운 좋게도 처음 캐나다에 도착해서 살았던 타운하우스 데크 50m 앞에 엄청나게 큰 잔디 공원이 있었다. 평소에 잔디 마당이 갖고 싶다 노래를 불렀더니, 우리에게 너무 큰걸 주셨네 하며 웃었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한동안은 잔디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들은 일어나자마자 집앞 잔디밭에서 뒹굴고, 뛰어놀고, 물총놀이를 했다.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릎까지 올라오는 푹신한 잔디와 3D 구름을 가진 천연색 높은 하늘에 그저 경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캘거리로 이사 온 후 현재의 내 집은 캐나다에서는 아주 흔한 마당 딸린 아담한 단독주택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짓고 싶었던 두 집이 붙어있던 땅콩집 스타일도 여기서는 너무나 흔하다. 그런 집의 스타일을 듀플렉스라고 한다는 것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캐나다식 목조주택을 그렇게 짓고 싶었는데, 그런 목조 주택에 결국은 내가 살고 있으며, 남편은 그런 주택을 짓는 사람이 되었다.

잔디는 보기에는 참 좋은데, 관리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힘든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살면서 여러 가지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살게 되는데,

나는 내가 사는 집에 가치를 많이 두는 편이다.

아무리 좋은 호텔에 있어도 내 집만큼 편하지 않듯, 하루 중 8할이상을 머무르는 곳이니, 처음 집을 고를 때 내맘을 흔들만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내 집이 된 이후에는 무엇보다 소중하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지금은 조금 더 큰 집을 가지고 싶은 꿈이 있긴 하지만, 작은 집이라도 깨끗하게 유지하며, 우리 집만의 향기를 가질 수 있게 꾸며가는 것이, 더 특별하고 가치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집이 그래서 나는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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