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 줄리아는 내가 한창 네이버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여서 줄거리를 보자마자 바로 관심이 갔었다.
미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 셰프인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에 소개된 요리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며 블로그에 올렸던 줄리 파월의 책 <줄리 & 줄리아>가 원작이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해서, 1950년대의 줄리아와 2000년대의 줄리의 모습을 교차 편집한 형식으로 내용자체로는 커다란 희열감이나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영화는 아니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노라 에프런이 감독이니 그녀 특유의 모던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도 좋아할 듯하다. 나는 평소 여성들의 감정을 너무나도 통찰력 있게 표현해 내는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를 대부분 다 좋아하는 편이어서, 줄리 앤 줄리아도 기대를 하며 보았고, 곳곳에 숨겨진 아기자기한 매력들을 발견하고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본 지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마침 넷플릭스를 보다 줄리 앤 줄리아를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맘에 클릭해 보았다.
이 영화는 1948년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도착한 줄리아 차일드와 폴 부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도착하자마자 버터에 지글거리는 프랑스의 가자미 버터 구이에 감탄하는 부부의 모습.. 아마 그때부터 줄리아의 프랑스 요리에 대한 미각이 살아났을 듯하다. 극 E성향인 줄리아는 이웃들과 금방 친해지며, 매일 가는 베이커리에서도 인싸다. 그런 그녀가 남편이 일하는 동안 무료하게 집에만 있는 것은 너무 싫다. 모자 만들기 클래스에도 가보고, 불어 어학원도 다녀보지만, 그녀 자신은 결국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취미로 시작한 요리 클래스에서 그녀는 더 전문적인 요리를 배우고 싶어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에 들어가게 된다. 남자들만 있는 수업시간에 남자들보다 더 큰 키로 당당하게 우뚝 서서 요리를 배우고, 힘겹게 양파 썰기에 도전하는 모습은 정말 재미있다. (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 남편 직장과 가까운 뉴욕 퀸즈로 이사를 하는 줄리와 에릭부부의 모습이 나온다. 줄리가 이삿짐 상자에 줄리아 차일드의 두꺼운 요리책을 챙기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녀는 지루한 일상에 유일한 활력소가 요리였으며, 남편과 함께 본인이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긴다. 피자건물 2층의 좁은 집으로 이사와 민원센터 공무원으로 일하는 줄리는 대학 때는 한때 잘 나가는 편집장으로 작가가 꿈이었으나, 30살이 되어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큐비클에 갇혀 민원 전화를 받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한다. 결국 자신의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보고자 이제는 출판되지 못하는 글들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블로그를 써보겠다고 결심한다. 남편은 아내가 평소 요리를 좋아하니 요리 이야기를 써보라고 추천해 주는데, 그녀는 남편의 도움으로 블러그를 개설하고, 너무나 아끼는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나와 있는 524개의 레시피를 따라 해보기로 한다. 마감이 없으면 끝까지 하기 힘들 거라며 365일간 524개의 레시피를 만들어보기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다.
줄리와 줄리아는 전혀 다른 시대 그리고, 주방의 크기만큼이나 다른 환경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평행선을 이루는 동질감이 있다. 둘 다 남편의 일 때문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으며, 낯선 환경에서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지 않고,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며 삶을 바꾸려 노력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둘 다 요리에 진심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줄리가 1년 동안 요리를 하면서 참고했었던 줄리아 차일드의 두꺼운 프랑스 요리책을 그 당시 줄리아가 어떻게 완성했는지, 또 줄리아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데, 두 여성 뒤에는 늘 적극적으로 아내의 일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스위트한 남편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공통적이다.
줄리아는 밸런타인데이 파티에 "당신은 내 빵의 버터이자 삶의 숨결이에요"라고 말하고, 둘의 일상을 늘 사진으로 남기는 로맨틱한 남편을 두었다. 그리고, 줄리 또한 블러그를 만들면서 내가 대단한 요리사도 아닌데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때 "줄리아도 날 때부터 요리사는 아니었잖아" 라며 진심으로 아내를 응원해 주며, 30살 아내의 생일에 줄리아 차일드가 늘 목에 걸었던 진주 목걸이를 선물해 주는 남편 에릭이 있었다.
줄리아의 성격은 정말 초긍정 여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털털하게 웃을 줄 알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깡충깡충 뛰며 기뻐할 줄 알고, 안 되는 것을 어떻게든 되게 하려는 그 열정은 정말 배우고 싶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없던 에너지도 생길 것만 같다. 남편보다 한 뼘은 더 큰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귀엽고 러블리할 수 있을까?
줄리아 차일드의 실제 요리 비디오 모습을 보니, 매릴스트립이 연기한 특이한 목소리와 발성, 걸음걸이 등이 바로 줄리아 차일드의 모습 그대로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녀라서 가능한 배역이었을 것 같다. 줄리아는 요리도 워낙 털털하게 해서 프라이팬으로 오믈렛을 뒤집다가 쏟으면, 손으로 막 주워 담으며,
"괜찮아요~ 다시 넣으면 돼요. 아무도 안봤잖아요? " 이런다. ㅎㅎ
하이톤으로 독특하게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웃으면서 "Bon appetit!"를 외치면 마치 "어쨌든 다 괜찮아~" 하고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든다.
영화를 줄거리로만 쫓아간다면 재미가 없을 수 있다. 나는 눈이 즐거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1950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건물들, 진주목걸이를 한 줄리아가 수건을 허리춤에 척 걸쳐놓고 입었던 앞치마 패션, 프랑스까지 건너온 줄리아 부부의 40년식 왜건 자동차, 줄리가 따라 했던 비프 브루기뇽과 다양한 요리들, 그리고 50년대의 줄리아의 부엌에 있던 부엌 용품들의 색감과 감각적인 레트로 소품 등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영화 내내 줄리아 부부의 서로에 대한 배려, 따뜻한 대화는 보는 이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내가 본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랄까...
10여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나도 책 한 권을 정해서 모든 요리를 한번 따라 해 볼까? 잠깐 생각한 적도 있었고, 만약 그걸 하게 된다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타샤튜더 할머니의 요리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마, 이 당시 요리에 관심 있던 블로거였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리라)
영화를 보면서 결국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무한 신뢰를 받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일은 무척 행복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