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삶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상황은 한국과 매한가지였을지 몰라도, 문만 열면 펼쳐지는 푸른 잔디 공원과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은 그 자체로 커다란 위안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곳 캐나다 삶은 내게 너무 만족감을 주었다. 영주권 취득 후 우리가 정착지로 선택한 캘거리는 로키산맥의 웅장함을 품고 있으면서도, 도시의 편리함을 다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캐나다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드는 도시라는 점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캘거리로 이사 후 그제야 '나만의 전문적인 일'을 꿈꿀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를 생각해 보니, 회사에서 무역업무를 했던 것과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잘하는 성격 그리고 컴퓨터를 쓰는 업무는 자신이 있어서 콜롬비아 대학에서 북키핑(Bookkeeping) 전문 과정을 시작했다. 북키핑은 회계 보조(Accounting Assistant)로, 퀵북(QuickBooks)이나 다른 회계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회사의 수입 및 지출을 관리해 주는 업무를 말한다. 수업은 8개월간 풀타임 과정이었고,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과정이 끝나면 곧 취업으로 이어질 거라 믿었지만, 수업을 시작한 후 몇 개월 안 되어 터져 버린 코로나는 모든 계획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수업의 절반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고, 현장에 나가 배울 수 있는 실습의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다. 일해본 경력도 없는 신입에게 사회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과정을 모두 이수한 후 이력서 제출을 아무리 해보아도 단 한 건의 답변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꿈을 잠시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과정을 이수한 후 취업의 쓴 맛을 보며 낙담하던 그해 연말, 우연히 캘거리 한인 여성 북클럽을 소개받았다. 당시, 캐나다 생활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은 한국책, 그리고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소통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Meetup'에서 북클럽을 뒤적거리던 참이었다. 영어책이라도 함께 읽어보자 하며 관심을 가지던 차, 마침 안부를 전해온 지인 호영이가 본인이 활동 중인 북클럽을 추천해 준 것이다. 마음속에 '북클럽'이라는 단어를 한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때에 마침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단톡 방에 초대받아 정기 모임 날을 기다렸다. 당시는 팬데믹 시기라 줌(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만 만나고 있을 때였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컴퓨터 화면으로 마주한 북클럽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모니터에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 둘 팝업창처럼 나타날 때마다, 잠자고 있던 내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직업과 취미를 가진 이들이 책을 매개로 나누는 이야기는 단순한 수다를 넘어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쳤다. 그날 발표 도중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그 눈물은 아마도 그동안 고립되고 좌절을 겪었던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였으리라. 그날 밤은 어쩐지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북클럽은 내 삶의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리는 중심축이 되었다. 우리는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매달 한번 모여서 그동안 읽었던 책을 리뷰하는 정기 모임날은 단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회원들이 소개해 주는 책들 중 관심이 가고 좋은 책은 나도 찾아서 읽게 되어 매번 좋은 영향을 받는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어야지 했던 노력도 이제는 매일 아침 6시 독서가 습관이 되어 한 달에 6권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북클럽 멤버들과 책만 읽는 건 아니다. 초창기에는 모닝워크 모임으로 다운타운 강가를 함께 걷기도 하고, 운동 소모임을 따로 만들며 건강도 챙기기 시작했다. 아이들 없이 자유롭게 브런치를 즐기고, 함께 하이킹도 가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설레는 일상을 보내게 된 것도 북클럽 멤버들 덕분이다. 바이올린처럼 어려운 악기를 북클럽 멤버 지혜의 소개로 인생의 절반을 넘긴 지점에 배워보았다. 4년 동안이나 레슨을 받고 결국 한인 오케스트라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내 모습을 예전에 상상이나 했을까? 젊은 날의 나조차 감히 꿈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러닝을 접하게 되고, 마라톤 대회까지 참가하게 된 것도 북클럽 내의 운동 소모임에서 했던 이벤트가 계기였다. 내가 오래전 꿈꿔왔던 기타 밴드 활동까지 가능하게 했고, 경제 공부 모임을 만들어 열심히 부를 쌓기 위한 공부도 함께 하고 있다. 경험 없는 내게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았던 북키핑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이 소중한 인연들 덕분이었다. 이제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뭐든 도전할 수 있을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만나면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게 되는 여유가 생겼고, 이해하는 폭도 더 넓어졌다. 내가 막 50을 넘겼던 시기에도 삶이 허전하다거나 공허함이 뭔 지 모른 채 갱년기를 지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가치 있는 일들 중 북클럽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몇 년을 거쳐 현재 북클럽 모임은 16명의 회원이 매년 회장을 돌아가며 맡으며 단단한 체계를 갖추었다. 회원을 더 늘일 생각도 없는 작고 소박한 모임이지만, 책을 통해 나누는 감정과 성장은 결코 작지 않다. 북클럽에서 주옥같은 책들을 함께 읽으며, 단지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경험을 하고 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삶의 태도, 긍정적인 마음, 밝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티슈처럼 차곡차곡 쌓인 변화들은 어느새 나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변화가 쌓여가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고, 이는 함께 해주는 멤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캘거리 북클럽 멤버로서 느끼는 자부심은 나를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마음 깊이 힐링되는 이 시간이, 늘 고맙고 소중하다.
이제 나는 60대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어떤 일이 생길지, 또 뭘 하고 있을지 더 설렌다. 10년 후 지금의 멤버들이 서로의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모습을 꿈꾼다. 캘거리의 눈부신 햇살처럼 우리의 북클럽이 만들어 갈 앞으로의 페이지 역시 환하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