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워크숍] 8.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

by 고들정희

손가락의 통증으로 멈춘 시간은, 역설적으로 글쓰기에 더 깊이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작년, 글쓰기로 작게나마 인정받는 기쁨을 누리며,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잘 쓴 글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읽었을 때 남다른 파장이 있고 진심이 전해진다면, 그것이 좋은 글이라 믿는다.


<흑백요리사 시즌2> 우승자 최강록 셰프가 마지막 결승에서 화려한 기술 대신, 정성을 다해 오랫동안 저어야 만들 수 있는 들깨 두부와 따뜻한 우동 국물을 내놓았었다. 나를 위해 만든 요리 앞에서 어눌하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요리 철학을 말하던 모습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기교도 없이 투박하고 장황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나는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머릿속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며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쓰고 있다.


김영하 작가의 팬으로 그의 필체를 좋아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작가에게 끌리듯이 말이다. 그분의 생각이나 독특한 철학을 좋아해서 인지 소설보다 에세이를 읽을 때면 으레 그분의 말하는 스타일이 떠오르면서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흔해 보이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그만의 스타일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김영하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은 건 그저 꿈이고, 그런 재능은 아마 다음 생애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문학 작품을 다량으로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긴 호흡을 가지고 써야 하는 글들을 써보지 못한 사람이다. 쓰는 것에 기교를 부리는 것도, 은유적 표현을 하는 것도 잘 못한다. 특히, 독자에게 웃음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건 어림도 없다. 그저 글쓰기를 함께 해보고 싶어서 모임을 만들었고, 회원들과 함께 일주일에 하나씩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써 보기로 한 것이 시작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써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타고난 작가 마인드이다. 반면 나는 주제를 던져줘야 겨우 글을 쓸 수 있는 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하면 처음에는 말문이 막힌 듯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어떤 걸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다 계속 반복적으로 그 주제를 자판으로 두드리다 보면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내 과거의 일들, 내 머릿속에만 묻혀 있던 생각들이 미역줄기처럼 줄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락을 완성하다 보면 어느새 글이 마무리되었다. 뭔가 막힌 곳을 해결한 느낌과 함께 개운한 기분도 들었다. 그런 방법으로나마 겨우 글을 써 나간 지 2년이 되었다.


양희은이 쓴 두 편의 유명한 에세이가 있다. <그러라 그래>와 <그럴 수 있어>. 한 가지 일을 몇 십 년간 해오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가 느껴지는 그녀 다운 제목이다. 양희은은 작가는 아니었지만, 20년 넘게 디제이를 하면서 매달 <월간 여성시대>에 글을 써내야 했다. 그녀는 매달 글을 쓰면서 마감을 지키는 것이 힘들었지만 자신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작정하고 앉아서 책 한 권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지 않아도, 오랫동안 꾸준히 써온 글들로 이렇게 책이 출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 준다. 예전 소모임 단톡방에서 누군가 캡처해서 올린 글이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위기가 닥쳤다고 짜증 내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해!"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그 글을 읽자마자, “그러려니 해? 이거 양희은의 3번째 에세이 제목 같은데?"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다 보니 양희은의 수필처럼 일상을 녹여내며 그 안에 따뜻함과 교훈도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 에세이 제목으로 "그러려니 해"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뭐가 되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것이 내 하루하루의 기록이 될 수도 있고, 일상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될 수도, 나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재미없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제법 의미 있는 글 모음이 될 거 같다. 괜찮은 글들이 많이 모이면 훗날 “고들 정희의 하루”라는 에세이집 한 권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글 쓰는 법이 지금보다 나아지고, 실력도 늘어나고, 거기에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통찰과 해학이 생겨난다면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도움이 될지도 모를 테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글을 쓰고, 공부하련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 조금이라도 계속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의미 있는 일이 돼 듯이 아무리 사소한 글이라도, 언젠가는 그 기록들이 나만의 의미 있는 인생 이야기가 되어 줄 거라 믿으니까.

이전 07화[자서전 워크숍] 7. 멈춤 그리고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