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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레아 Jan 13. 2019

낙엽 넷,
두려움 없이 뛰어들다 (2)

소중한 것이 과거가 되지 않도록


소중한 것일수록 잃었을 때 크게 무너지고, 상처가 클수록 무너진 마음을 다시 쌓는데 오래 걸린다. 그림이 그랬다. 흰 종이를 마주하게 될 때면 목구멍에서 울음이 차올라 꿀꺽, 하고 날카로운 기억을 삼키곤 했다. 종이 위에 검은 점을 찍었다가도 긴 선으로 잇지 못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끈적거리는 두려움은 발을 잡아끌어 낮은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곳, 찬란하게 아름다운 포지타노는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이것을 떨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른 아침, 태양이 뜨겁고 눈부셨지만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걸었다. 쏟아지는 밝은 햇빛과 마을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다. 지나는 모든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나에게 오는 즐거운 기운을, 축복의 인사를 흘리지 않고 차곡히 쌓고 싶었다. 빛나는 얼굴로 집과 집 사이, 가게와 가게 사이를 누볐다. 언덕 위까지 오르니 동네가 한눈에 보였다. 벅차오를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모든 것들이 선명한 색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난간에 걸터앉아 조용히 노트를 꺼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시의 모습을 옮기기 시작했다. 펜을 다시 든 건 몇 달 만이었다. 이 도시가 내 손을 빌어 다시 종이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나의 감상이 검은 잉크를 입고 종이 위에 스며들었다. 





다시, 흰 종이 위에서 뛰놀던 기쁨이 되살아났다. 이 곳에 있다는 사실, 눈 앞의 풍경들, 그림 그리는 감각, 기쁨의 한가운데 있다는 실감, 이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냥 떠내려가게 두지 않을 거야.” 


조용히 다짐했다. 지금을 기록했듯, 나의 모든 행복과 슬픔과 기쁨을 기록하기로.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지금에 살도록,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포지타노의 선물

아니, 선물같은 포지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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