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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레아 Jan 13. 2019

낙엽장수의 하루 (1)

낙엽을 팝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몽마르트르 언덕의 차가운 돌바닥을 쓸고 지난다. 바짝 마른 낙엽들이 뒹굴며 길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빨간 벽의 프렌치 레스토랑과 인쇄된 명화들이 잔뜩 진열된 그림 가게 사이로 빠르게  지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익숙하지 않은 듯 몸을 잔뜩 움츠린 모양새다. 사람들 너머로 우뚝 솟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한 여자가 그 옆을 지키고 앉아 있고, ‘STORY SELLER, Leah Kim’이라고 적힌 종이 팻말이 눈에 띈다.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라... 이름에 걸맞게 벽에는 만화 형식의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다섯 컷으로 그려진 나뭇잎의 이야기.



“나는 쓸모없는 낙엽이었어요.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주웠고,

지금은 행복한 나무가 되었어요. 

만약 당신과 함께하게 된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 거예요.” 



매해 가을, 어디를 가나 거리에 잔뜩 쌓여 있는 낙엽, 그 흔한 낙엽이 말을 걸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데려가면 좋겠다'라고. 가만 보니 여자는 나무에 달린 낙엽을 팔고 있었다. 한 장에 2유로, 한국돈으로 삼천 원 남짓한 돈이다. 낙엽에 값을 매겨 팔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얘기가 떠오른다. 아니, 그나마 물은 쓸모라도 있지. 낙엽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 아닌가. 

나무에는 색과 생김새가 모두 제 각각인 낙엽들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뾰족한 초록 잎, 짤따란 노랑 잎, 갈기가 큰 갈색 잎, 복잡하게 잎맥이 뻗어 있는 자주색 잎. 이파리들은 하나 같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그림에서 말한 대로 나무가 되어 행복한 것일까.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가까이 가보기로 한다. 누군가는 나무 주위를 빙 둘러 구경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지나가다 걷는 속도를 늦춰 그림 앞에 머물다 가기도 한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아주머니가 나무를 지키는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낙엽을 팔 생각을 하다니! 원래 네 나라에 있는 거야, 아니면 네가 생각한 거야?”


여자가 멋쩍은 듯이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신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이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각이야! 내 손주한테 얘기해 줘야겠어. 여행 경비를 벌고 벌고 있는 거야?"


여자는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저는 지금 꿈을 이루고 있는 중이에요."


"꿈을 이루고 있다고? 낙엽을 파는 것이 꿈이란 말이지?"


"음,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를 팔아보는 게 저의 작은 꿈이었어요."


"낙엽이 아닌 이야기를 판다고? 더 설명해줄 수 있겠니?"


"낙엽은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잖아요. 근데 이렇게 그림도 그리고, 글도 적고, 나무도 만들어요. 이야기를 만들어 입히는 거죠. 그럼 이 낙엽들은 이야기를 가진 낙엽이 되는 거예요. 길가에 굴러다니는 낙엽과는 달라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만, 이야기로 인해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거죠. 이야기는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낙엽이 2유로나 하는데 누군가가 정말로 이 낙엽을 산다면, 그건 이야기의 힘이 증명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야기를 판 셈이죠."


"오, 이 전시회에는 깊은 생각이 있구나? 왜 이야기를 팔려고 한 거야?"


"할 수 있다는 걸 저 스스로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야기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글도, 그림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하고요."


"여행이 이걸 할 수 있게 도왔다는 거로구나. 좋은 기운을 받았나 보네."


"맞아요. 저는 오랫동안 여러 도시를 여행했죠. 가는 곳마다 도시들은 꼭 그 도시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저한테 해줬어요. 그 시간들은 바람 빠진 풍선인형 같던 저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줬죠.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고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곳을 닮은 낙엽들을 주웠답니다. 이 낙엽들에는 제 여행 기억들이 담겨 있어요. 사람들과 낙엽을 나누면서 여행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오, 모두 다른 도시에서 온 나뭇잎이란 말이지? 모양이 참 많이 다르다 했지!”


“낙엽 뒷면을 봐요. 어디에서 왔는지 적혀 있죠.”


아주머니는 여자의 말대로 붉은 잎 하나를 뒤집어 본다. 

“음, 이 낙엽은 그리스에서 왔네? 이카… 리아 섬?”


“그래요, 이카리아! 그곳은 가장 느리고, 가장 오래 사는 섬이죠.” 

여자는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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