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아리 May 14. 2022

서른셋의 나, 엄마와의 통화

아 이게 말이죠, 2년 전의 이야기네요 벌써. 지금도 비슷해요.

2020년 1월의 어느 날, 일주일 만에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대구에서 어린이 서점을 운영하는 엄마는 네가 올해 몇 살이지...라는 말을 시작으로, 87년생 그러니까 나와 동갑인 한 손님이 아이를 둘 데리고 책을 사러 왔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다고 말했다.


나는 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나를 걱정해서라기보단 엄마는 그분의 엄마가 부러운 것이다. 딸이 결혼도 하고, 손자 손녀까지 있으니까. 엄마는 가지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 마음먹는다고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속성의 것도 아니니까. 예전 같았으면 짜증을 냈겠지만 이제 나도 적응이 되었다. 생각도 심플해졌다. 내 생각의 자유가 있듯 엄마도 엄마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가 있다. 단지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할 뿐이다.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십 대 초중반 때처럼
나랑 동갑인데 결혼을 했다고?!

나랑 동갑인데 애가 하나 있다고?!

나랑 동갑인데 애가 두 명 있다고?!

와 같은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와 동갑인데 애가 두 명 있을 수도 있고,

나와 동갑인데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도 있고,

나와 동갑인데 자기 사업체를 차릴 수도 있고,

나와 동갑인데 공부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나와 동갑이면서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있고,

나와 동갑이면서 쉬고 있을 수도 있고,

나와 동갑이면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단계일 수도 있고,

서른셋에 집도, 차도, 남편도, 아이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서른셋에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던 나의 어머니의 삶은 모든 다른 어머니들의 삶과 똑같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여자라서, 일을 해서, 엄마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서-와 같은 이유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그 시기를 버티고 살아온 그 자체, 삶에 대한 존중이다.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환갑의 엄마.
하지만 나와 동생은 이미 독립(독립이 결혼은 아니지만, 더 이상 우리에게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없다는 의미)한 지 몇 년이나 지났기에 이제는 일종의 취미이자 성취의 의미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평생을 일을 하며 살아서인지 엄마는 딸인 내게 종종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너는 일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
(그렇다고 내게 줄 돈이 있는 건 아니니, 그 말에는 제3자에게 의지하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인생을 통해 엄마가 내게 보여준 것은, 경제적 독립의 중요성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질 수 있는 자유의 크기를 나는 평생을 통해 목격했다.


그리고 서른셋이 된 나는 내 시간에 대한 통제권과 나를 돌볼 권리, 의무를 지닌 채

가끔은 쓸쓸함이 자욱하게 떠있지만 대체적으로 평온하고 자유로운 3평짜리 공간에서 살아갈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것도,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그렇게 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물 흐르듯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그 후로도 2년이 더 지나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고, 내 상태는 2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엄마는 조금 변했다. 이제는 건강하고 재밌게 살면 그걸로 됐다,라고 한다. (포기...?)
그리고 '내년에는 은퇴하고 쉬겠다'라고 한다. 그 말은 5년 넘게 변하지 않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년 추석, 소원을 말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