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머그잔에 커피 한 잔은 언제쯤.. 지갑 속 로또는 언제쯤...
내 지갑 안에는 싱가포르 로또 두 장이 들어있다. 3월 14일, 싱가포르 로또가 당첨확률이 높다는 친구 J의 말을 듣고 같이 Singapore Pools (*싱가포르에서 로또 파는 곳)에 가서 구입했던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J를 다시 만날 수도, 당첨금 20불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두 달 넘게 방치 중이다.
싱가포르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6월 1일까지 서킷 브레이커가 실시되었다.
모든 식당과 카페는 포장과 배달만 허용되고, 대부분의 리테일 상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게다가 '음료'만 판매하는 버블티 샵은 문을 닫으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음료는 음식만큼 필수적 요소는 아니며, 줄을 길게 서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버블티 금단 증상(?)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에서 버블티를 만들어먹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정부 정책에 시니컬하게 대꾸할때 이 <버블티 샵>을 자주 언급한다.
한 가지 더 황당했던 조치는 미용실과 관련된다. 서킷 브레이커 초반에는 커트만 가능하며 염색이나 펌 등은 허용되지 않았다. 얼마 후 미용실, 네일샵, 마사지샵 등 완전히 문을 닫으라는 지침이 나왔다. 우스갯소리로 집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둘 다 머리가 많이 길었네. 묶어야지 뭐..."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시며 남는 시간에 재봉틀로 머리띠를 만들어 주셨다.
5월 19일, 싱가포르 정부는 장관 연설을 통해 규제 완화를 3단계에 걸쳐 진행한다고 밝혔다. 일명 포스트 서킷 브레이커이다.
6월 2일부터 몇 주 동안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았다) 실시될 1단계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점차 자택 근무 대신 회사 출근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기계운영이 필요한 공장을 포함한 제조업, 외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재무, IT 등 분야에 우선시된다.
다시 말해 그 외 직종은 자택 근무를 하는 것을 권유한다. 또한 정부에서 지정한 안전 수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강력한 조치가 취해진다.
식당과 슈퍼, 수리 서비스, 애완용품샵, 학생용 서점, 교복 판매샵 등만 운영이 가능하다.
물론, 체온 검사와 개인 정보를 제공해야 입장이 가능하고, 식당과 카페는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미용실 역시 다시 재개가 되며, (다행히도?) 모든 헤어 드레싱 서비스가 허용된다고 한다.
웃긴 내용이 하나 있다. 6월 2일부터 가족과 친지 방문은 허용하나 한번에 2명만 방문이 가능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적용하는 건 이해하지만 이 정도로 디테일한 항목들을 보고 있자면 흡사 게임 규칙 설명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한 타임에 10명 이내의 방문객으로 구성된 결혼식, 장례식만 가능하다.
사적인 예배만 가능하다. 한 번에 한 가족 5명까지만 같이 기도가 가능하다.
서킷 브레이커 때처럼 운영이 불가하다.
일부만 우선 등교, 그리고 조금씩 늘려가며 허용된다고 한다. 아이들, 학생들의 건강이 걸린 부분이라 아마 조금 더 신중하게 지켜볼 듯하다.
2단계가 되면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재개하고 마침내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머그잔에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다. 헬스장과 요가 스튜디오도 문을 열고 모든 학생들이 등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술집이나 클럽, 영화관등은 운영이 불가하다.
3단계가 되면 드디어 모든 문화활동, 소셜 활동, 종교활동, 이벤트 등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모이는 인원수를 제한할 것이다.
약 두 달 동안 내가 대면을 한 사람을 다 헤아려봐도 10명이 넘지 않는다. 요즘 자주 가는 집 근처 인도 슈퍼의 카운터를 지키는 언니를 포함한 숫자다.
2020년 6월이 되면 1년을 한 번에 등록해둔 요가 스튜디오도 가고, 지인들과 식당 가서 맛있는 밥 한 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조차도 한동안 어려워졌다. 집주인 내외분과 대화를 나누면 다른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경제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시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4월, 서킷 브레이커가 발표될 당시만 해도 첫 느낌은 답답함과 짜증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포스트 서킷 브레이커 3단계를 보니 흠, 이 곳에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런 식으로 극단적으로 몇 달 동안 사고파는 행위를 올 스탑 해버리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리테일러들이나 회사가 얼마나 될까? 외국인 노동자 신분인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모든 이들에게 처음인 이 상황.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는 것도 점차 적응이 되었다.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루틴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욕망은 점점 줄어들고 단순한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조율할 수 없는 부분에는 담담해지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가야 할 안전 수칙들... 습관으로 만들어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게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모두들 안녕하시길.
3단계 포스트 서킷 브레이커 발표 후 유튜브에 달린 몇몇 덧글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
- 6월 2일부터 복권은 다시 살 수 있나?
- 버블티 샵이 여는지만 알고 싶어
-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버블티 샵은 언제 오픈하는 거야?
- 2명만 방문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애가 셋이고 부모님께 맡겨야 하는 상황이면, 막내는 집 밖에 둬야 한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