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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Aug 02. 2020

싱가포르-3달만의 미용실 방문과 3가지 문답

2020년 7월, 싱가포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헤어스타일은 거의 유사하다. 

파마의 유무를 제외하고는 20년이 넘게 단발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하기에 내 뒤통수가 납작한 편이고, 머리카락이 얇아 긴 머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다행히도 단발머리가 내 작은 이목구비에 가장 잘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귀찮음이다.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감고 말리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는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앞머리도 마찬가지다. 넘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눈썹이다. 앞머리가 눈썹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이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엄지와 검지 손가락에 가위를 끼운 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전투를 준비한다.


싱가포르의 미용실 가격은 비싼 편이다. 바나나와 대중교통 금액 빼고는 대부분이 비싼 싱가포르. 동네 쇼핑몰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려면 4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주말이면 싱가포르 국경 근처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도시, 조호바루로 찾아가 미용실, 네일샵, 마사지를 즐기곤 했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미용실에 가는 돈이 정말 아깝다고 생각한다. 내 머리는 (내 생각에) 자르기도 쉽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아주 명확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많이 길었다. 마스크가 의무화되기 전, 그러니까 락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리를 잘랐으니 어느덧 3달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가. 카페와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할 수도 없었고, 가족 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역시 제한되었다. 미용실 역시 한동안 싱가포르 정부 지침으로 문을 닫았던 터라 집에서 염색을 하거나 머리를 자를 수 있는 능력(혹은 용기)을 지닌 부지런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락다운이 완화된 후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면 대개 머리가 훌쩍 길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야말로 온전히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상이었다. 


싱가포르에 온 지 1년이 된 나의 두 번째 미용실 방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일반 미용실은 아니다. 싱가포르 미용실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커트’만 제공하는 미용실이 따로 있다. 아이들이나 남자들이 많이 찾는다. 인테리어도 없고, 멋진 조명이나 잡지, 꽃장식, 음료 서비스 같은 것도 없다. 샴푸를 해주거나 제품 판매도 하지 않는다. 서비스는 오롯이 ‘헤어 커트’ 하나, 길이와 상관없이 가격도 12불로 통일이다. 자판기에 12불(약 10500원)을 넣으면 티켓이 나오는데, 그걸 주고 병원처럼 하얗고 정확한 조명 아래의 의자에 앉으면 된다. 꽤나 기계적이고 실용적이다. 헤어커트 전문가 두 분이 원하는 길이를 묻고 곧바로 가위질을 시작한다. 내게 딱 맞는 곳이다.


이제는 필수가 된 전자 출입 명부 등록 QR코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12불을 넣고 티켓을 뽑은 후 마스크를 쓴 채 자리에 앉았다. 보이지 않는 턱 끝 대신 마스크 끝 정도로 길이를 맞춰달라 말씀을 드렸다. 분무기로 머리카락에 물을 쓱쓱 뿌린다. 그러다 말고 질문 하나를 던진다. 


“컨디셔너 쓰세요?”  


일반적 미용실이라면 대화가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 네, 써요. “

“ 뭐 써요? “

어떤 제품을 쓴다고 하면 더 좋은 제품을 추천해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컨디셔너를 안 쓴다고 대답해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다. 아무것도 팔지 않는 이 곳에서는 이렇게 대화가 진행된다.


#1

"컨디셔너 쓰세요?"

“ 네... (약간 찔림)”

“ 아.. 아 머리를 빗는데 잘 안 내려가서 (웃음)”

“ 사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2

머리를 빗다가 갑자기 미안해하신다. 

“ 아프죠? 머리카락을 빗어야 되는데 좀 많이 엉켜있어서...”

나는 더 미안해하며 자기 고백의 시간을 가진다.


“ 아.. 안 아파요, 괜찮아요. 제가 사실 머리를 거의 안 빗어요.... “

“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지셨다.) “


#3

옆머리를 어느 정도 자른 후, 앞머리 손질 차례가 되었다. 앞머리는 1주일 전 내 손으로 뚝 잘라 이미 길이는 손댈 필요가 없던 차였다. 

“ 앞머리는.....  (지금 너무 똑 떨어진 앞머리죠? 언니가 자연스럽게 다듬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미소를 띤 채로 한마디 하셨다.


“ 앞머리는 D.I.Y 죠? “

“ (이번에는 내가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 “

“ 지금은 너무 가위로 쓱 자른 것 같으니까 길이를 조절해서 다듬어달라는 거죠? “

“ 네 바로 그거예요.”

“ 앞머리는 사실 밖에서 자르면 돈이 아까워요. “

“ 네, 맞아요.."

" 내가 집에서 어떻게 자르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지 알려줄게요. 어차피 일반 가위 밖에 없을 테니까. “

“ 감사합니다! “


앞머리를 두 손가락으로 쭉 잡아 위쪽으로 올린 후 손가락 위로 튀어나온 부분만 슉슉 자르면 된다고 했다. 그걸 몇 번 반복하면 된다고.

지금까지 내가 자른 방식과는 완전히 180도 다른 방식.

나는 앞머리를 아래로 빗어 정렬한 후 쓱싹쓱싹 잘라냈다면, 

새로 배운 방식은 위로 올려 슉슉, 하는 방식으로 날렵하게 앞머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아마 8월 중순쯤 써먹어보지 않을까 싶다. 

세 가지 고백 후 앞머리 자르는 방법을 배웠고, 머리 감기 수월할 만큼 길이가 짧아졌고 배가 아플 만큼 웃었다. 


"다음에는 better D.I.Y 앞머리로 찾아올게요."라고 말하며 내 소지품을 챙기며 인사했다. 

Bye bye! 


둘 다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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