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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인 Aug 06. 2020

"이사님 저 퇴사합니다."

흔하디 흔한 퇴사일기가 아니라 생존일기

인턴부터 꼬박 3년 11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진정한 나의 첫 사회생활은 그곳에서 시작됐고, 나의 20대는 그곳에서 마무리됐다.

쑥스럽지만, 나는 꽤 로열티가 높은 개미 일꾼이었다. 배우고 싶은 선배들이 있었고, 나에게 역할력을 부여해준 후배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랜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조직이 좋았고. 생각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 좋았고,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준 회사가 좋았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약 4년이라는 시간은 사회생활을 떠나 인생의 포트폴리오 첫 페이지를 만들어 준 곳이기도 했다.


우왕좌왕이지만 팀원들은 내가 잘 지낸다고 싶었던 그 시점 이사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이미 이사님 오피스 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의 동공은 '아 네가 떠날 때가 됐구나'며 말하고 있었다. '네, 이사님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나는 당차게 회사문을 걷어차고 나왔다.


그래, 사실 여기까진 흔하디 흔한 퇴사 일기다. 보통 이쯤 되면 자아를 찾거나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내가 읽은 일기의 결론이었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나는 아니다.



전무님의 따스함도 팀원들과의 소소한 펜 나누기 시간도
제일 좋아하던 생일축하 이벤트도 워크샵도 이제 안녕!



오후 11시 20분. 잔인하지만, 컨설팅에서도 스타트업에서도 일 좀 한다는 그 시각. 퇴근하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이사님의 오피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내가 앉았던 빨간 스툴도 또렷하게. 그 그림과 함께 조용히 읊조렸다. '아.. 왜 그랬니. 그리고.. 이사님 저 좀 말려주시지 그러셨어요..'


무섭고도 놀라운 것은 나의 청춘을 함께한 그곳을 왜 나오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이사님 방의 그 빨간 의자보다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다. 어렴풋이 설명할 수 있는 건. 내가. 나 스스로 컴포트 존을 벗어나 스스로 환경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냐 분명 회사에 섭섭한 것도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지금 생각 안나는 것을 보면 지금은 없는 장점이 있었던 거다. (감정을 그렇게 오래 기억하는 능력은 다행히? 없는 편)


퇴사 축하로 받은 꽃과 읽다 엉엉 운 편지들

약 9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내린 당시의 병명은 '퇴사병'이다. 정말 솔직히, 당시 브런치에 페이스북에 쏟아지는 퇴사 기록들을 보고 나 또한 그 반열에 오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퇴사하면 다 멋있는 줄 알았지. 다 연봉 올리고 업무 확장하고, 그러는 줄 알았지. 스타트업가면 세상 수평적인 줄 알았지. 기여하는 만큼 인정받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스타트업이라는 정글에 들어서는 순간. 큰 브랜드들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고상하고 고고하게 브랜드의 멋에 대해 설명하던 나는 와장창-바스락-자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빨간 의자에 다시 앉으면 다른 선택을 할래?라고 물어보면 "그건 또 정말 아닙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 '해결되지 않는 것은 고민하지 말자'이미 내가 내린 선택지가 하나라면, 옳게 만들면 되지. 그리고 그 점 또한 언젠간 연결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또 나름 힘들지 않은 건 아니라서, 점들이 좀 더 빨리 연결되길 바라며 '스타트업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살아남기'로 정리하려고 한다. 이 글들이 끝나면, 나는 어디쯤 있을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건투를 빈다.


힘들 때마다 먹었던 최애 버거




브런치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꼭 한번 이 제목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막상 해보니까.. 세상에 너무 자극적이잖아..

후. 짜릿해.

이 제목 쓰려고 퇴사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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