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시 뉴스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다] #1

정상성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by 다시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배 속에 있는 둘째의 장애를 알게 된 후 아이를 포기하자며 남편이 한 말이다. 대학병원에서 양수검사를 했더니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99.7%라고 했다. 가족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 아이를 낳으면 불행해질 거라고, 가난해질 거라고, 더는 평범하게 살지 못할 거라고, 내게 임신 중지를 권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혼자라도 낳겠다고 우겼다. 임신 후기는 지옥이 됐고, 둘째를 낳으며 우리 가족은 ‘정상 가족’의 테두리에서 쫓겨났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던 남편은 나를 떠나진 않았지만, 우리는 싸움을 거듭하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사이로 아이를 만났다.


둘째는 21번 염색체가 세 개인 '이상'을 가진 장애아였고 우리는 장애아 가족이 됐다. ‘평범’, '정상'이라는 말은 목에 박힌 가시처럼 아픈 말이 되고 말았다. 비슷한 말로는 '일반'이 있다. 장애인에 대응하는 말로 비장애인 대신 '일반인'을 쓴다는 걸 예전엔 인지하지 못했다. 세상은 장애아가 아니면 '일반 아이', 장애 학생이 아니면 '일반 학생', 특수학급이 아닌 학급을 ‘일반 학급', 특수학교가 아닌 학교를 ‘일반 학교'라고 부른다. 내 둘째는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없거나, 다니더라도 일반 학급이 아닌 반에서 수업을 듣는, 일반 학생이 아닌 학생이 될 것이다. 아직은 어려서 '일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아이가 크고 장애가 드러날 때가 되면 어디로 보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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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장애에 대해 동정하는 지인에게 불쾌한 마음을 표현했다가, 도리어 충고를 받았다. ‘평범한 아이 키우기도 힘든데 너는 얼마나 더 힘들겠냐’며 모나게 굴지 말라는 것이다. 졸지에 나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평범하지 않은 엄마가 되었다.


장애아의 엄마 중에는 산전 검사에서 모두 '정상'이었는데 왜 아이에게 장애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고 산부인과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첫째가 모든 산전 검사에서 '정상'이었고, '정상'으로 태어났기에 둘째 산전검사에서 '이상'이 나와도 실제로 이상이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말로는 “장애를 가진 아이도 똑같이 사랑해줄 거야.”라고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기형아 검사가 잘못되었을 거라고, 내 아이가 진짜 기형아는 아닐 거라고 믿었다. 둘째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딸 하나, 아들 하나인 4인 가족을 꿈꿨다. 내가 그리던 미래에 매일 재활치료실과 종합병원에 다니는 일상은 없었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간호사가 인큐베이터로 옮기기 전 내 가슴팍에 아이를 올려 잠깐 얼굴을 보여줬다. 갓 태어난 아이가 너무 예뻐서, 0.3% 확률의 기적이 일어나 양수검사를 뒤집고 ‘정상’인 아이가 태어난 건 아닐까 희망을 품기도 했다.


둘째가 수술을 마치고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던 중 염색체 결과가 나왔다. 21번 염색체 자리에 세 개의 막대가 그려진 결과지를 보고서야 아이의 장애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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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장애를 알리고 글을 쓰자, 한 지인은 "너는 어쩜 그렇게 훌륭하니"라며 칭찬했다. "알잖아. 안 훌륭한 거. 글에서만 그런 척하는 거야."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지면에서, 온라인상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이도 똑같이 사랑하는 훌륭한 엄마인 척하지만 나는 매일 두렵다. 유아 차에 앉은 둘째를 보고 귀엽다고 웃어주는 이웃들이 아이가 커서 생김이 조금 다른 게 드러나고, 발음이 어눌하고, 나이답지 않게 말하고 행동할 때, 지금처럼 귀엽게 봐줄까? 세 살인 지금은 치료사, 의료진들이 귀여워하지만, 학교에 가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규칙을 이행하지 못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아이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둘째의 장애 때문에 첫째에게 힘든 일이 생긴다면, 나는 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도 SNS에 가족사진을 올리곤 했다. 네 명이 함께 찍은 사진 밑에는 "행복한 가족이네요", "예쁜 가족 보기 좋아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근육에 힘이 없어 앉지 못하는 아이를 겨우 기대어 앉혀서 늦은 백일 사진을 찍었다. 첫째 백일 때부터 정기적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온 집 근처 사진관이었다. 첫째 이름도 기억하는 사진작가님이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걸 눈치챌까 걱정이 됐다. 사진을 찍는 동안 괜히 그에게 말을 걸고 이것저것 부탁했다. 그 역시 아무렇지 않은 부부인 것처럼 대답하고, 카메라를 보고 웃기도 했다. 그가 평범한 정상 가족을 원하는 게 원망스러웠지만, 그 덕에 사진에서나마 정상 가족을 연출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때도 우리는 첫째가 원한다는 핑계로 종종 가족 나들이를 했고 화목한 가정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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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같이 싸우면서도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라도 나는 정상성을 가진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지만 우리는 행복해'라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아서 가정이 파탄 났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둘째의 장애가 아무 타격도 주지 않았다는 듯,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엄마 노릇을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비장애인으로 한평생 살아온 내가 갑자기 무결하고 훌륭한 장애아 엄마가 될 수는 없다. 미처 자각조차 하지 못한 편견이 내 안에 가득 있을 것이고, 그것들이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아이에게 수치심을 가르칠까 염려된다.


정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매일 모순된 말을 늘어놓고, 불안과 슬픔에 자주 빠지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글로 쓰면서, 혼자 서고 걷지 못하는 세 살 난 둘째를 조급한 눈으로 바라본다.

내 다짐은 그저 이 혼란과 흔들림을 전부 말하고 쓰겠다는 것,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아 덜컥 장애아 엄마가 된 비장애 여성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일상을 사는지 세상을 향해 외칠 거라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수치와 상처와 결핍으로 얼룩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놀라운 기적"(<다가오는 말들>, 은유, 어크로스, 256쪽)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작성자: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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