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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의 다시 읽기] #2

너 자신이 동양인임을 알라

by 다시

어릴 적 변변한 놀거리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교성도 없어 주말 오후가 늘 심심했다. 돌아보면 그렇게 시간이 더디 가던 그때가 참 좋은 때였다. 여하간 구세주는 브라운관 TV였다. 방송사가 시간 때우느라 맥락 없이 방영했던 외화들을 브라운관이 뜨거워질 때까지 보았다. 그중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영화 한 편이 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양육권 소송 이야기라 슬퍼서 그랬냐고? 전혀. 낯설고, 놀랍고, 상황과 주인공들이 이해가 안 됐다. ‘아이를 누가 키울 거냐’는 문제를 재판을 통해서 가린다는 것부터, 그걸 아이한테 물어본다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아이가 처한 상황에 압도되어, ‘미국은 냉정하고 무서운 나라구나’ 생각했다. 그 차갑고 생경한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잊히지 않았다.

20211111_c5ab6cebaca97f7171139e4d414ff5a6.jpg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

그 느낌 때문이었을까? 자라면서 미국을 포함한 서양이 이상하거나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은 점차 사라졌지만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른지는 늘 궁금했다.


이 책 ‘생각의 지도’가 오래된 궁금증을 속속들이 풀어줬다.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라는 부제가 제대로다.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로, 현재 미시간대학교 시어도어 뉴컴 석좌교수다. 이 책을 번역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지도교수였던 저자는 최인철을 포함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한 방법으로 사고하고 생각한다고 전제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을 서양의 대표로, 동아시아를 동양의 대표로 삼아 비교 연구해, 2004년 이 책을 출간했다.

20211111_dcf3219715a7c9cd9286f19db46f2384.jpg <생각의 지도> 원서 표지

저자는 자기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차이점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동양인은 더불어 사는 삶을, 서양인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동양인들은 인간관계에 조화롭게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지만, 서양인들은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동양인들은 집단의 통제를 수용하지만, 서양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선호한다.


세계를 지각하는 방법도 차이가 난다. 동양은 전체를 종합적으로 보아 일부만 보아서는 전체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서양은 부분을 분석해야 전체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과론적 사고에서도 동양은 상황론을, 서양은 본성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도를 닦고 서양인들은 삼단논법을 익혔을까. 언어를 배우는 양상도 다르다. 관계중심적인 동양인들이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사물을 중심으로 규칙이 있다고 보는 서양인들은 명사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실제로 아이를 양육할 때도 서양 엄마들은 눈앞에 있는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명사를 통해 가르치지만, 동양 엄마들은 그것들의 관계를 언급하느라 동사를 자주 쓴다고 한다. 그리고 서양은 논리를 중시하지만 동양은 경험을 중시한다.


모든 주장들은 수많은 실험 결과를 통해 얻은 결론들이라서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비교란 얼마나 대단한 방법인지. 나의 모습과 다른 타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차이를 알고 나서야 각각이 오롯이 보인다고 할까.


나는 그동안 나의 ‘동양스러움’을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거의 모든 것은 서양적인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인간은 주체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고, 이성에 기반한 과학적 세계관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방식을 훈련했다. 그리고 ‘범생이’ 답게 의문 없이 그것을 지향해왔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동양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며, 이 사고는 생활 속에서 내 몸에 익혀진 것들이라는 사실이었다. 후배에게 자기주장을 자제하고 눈치껏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회사의 판단이 달라지는 걸 팀원들에게 설득하고, 세세히 분석해 달라고 하면 미간을 찌푸려가며 집중을 해야 하고, 팔이 안으로 굽으려는 걸 안간힘을 써서 막아야 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난감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단순히 내 개인적인 특성이고 고쳐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나의 ‘동양스러움’, 즉 나와 내 조상이 살아왔던 사회 문화의 영향이었다니.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두 사회의 생태환경은 경제적 차이를 가져왔고 이는 다시 사회구조의 차이를 불러왔으며,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을 맞춰갔던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앞으로도 유지될까? 저자는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나의 예가 홍콩이다. 두 문화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홍콩인들의 경우 서양적 이미지에 노출되면 서양식 귀인을 하고 동양적 이미지에 노출되면 동양식 귀인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어떤 경우에는 동양인처럼 행동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양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 책의 소중함은 여기에 있다. 나의 동양적인 면모와 서양적인 지향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자유롭게(!) 내 관점을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생각의 지도를 갖고 있는 여행자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가능성은 높아질 테니까.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날카로운 칼날의 느낌쯤으로 기억하고 있던 어린애는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참고로 이 연구에 동참한 대학원생이자 현재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는 이후 ‘프레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냈다. 동서양의 차이를 규명하고 보니 자신만의 프레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했던 걸까?


이수정 - 크크.JPG 다시뉴스 필진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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