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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뉴스

[그때 그 노래] #2

정말 좋은 때였어 Those were the days

by 다시

그땐 그랬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스무 살의 대학생이 되었다. ‘스무 살’이라니! 지금 들으면 왠지 마냥 부럽고,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단어가 아닌가.


그때는 왜 그렇게들 술을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대학생들이라 술은커녕 밥을 사 먹기도 급급했는데, 이상하게도 술은 마시려고만 하면 어떻게든 마실 수 있었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단골 식당 겸 술집의 마음씨 좋은 주인장을 선배들은 ‘이모’도 아닌 ‘엄마’라고 불렀다. 안주 살 돈이 부족한 날에는 유일하게 주문했던 김치찌개 냄비의 밑바닥까지 긁고는, ‘엄마’ 눈치를 보며 단무지나 야금야금 갖다 먹었다. 아니면, 아예 새우깡 한 봉지와 함께 교정의 잔디밭이나 길바닥에 앉아 퍼마시는 모습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술이 들어가면 또 약속이나 한 듯 다 함께 식당이 떠나가라 노래를 불러 젖혔다. 어느 밤에는 ‘엄마’가 어디서 각목을 주워와서 휘두르는 시늉까지 하며 “조용히들 해애애애~!” 외치셨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우리는 다시 낄낄 웃었다.


주종은 주로 소주나 막걸리였다. 좀 더 나중에 ‘OB 광장’이라는 호프집에 가서 차가운 생맥주가 가득 채워진 500CC 유리잔을 들었을 때는, 조금 과장하자면 ‘신문물’을 접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실 중요한 건, 술이나 장소가 아니었다. 길바닥이든 허름한 단골 식당이든 호프집이든, 술을 잘 마시든 못 마시든, 뜨겁고도 말랑말랑한 가슴의 ‘우리’가 ‘함께’ 노래하고, 웃고, 토론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하고 공감하며 그 시간을 공유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땐 그럴 때였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술집


그런 뜨거웠던 젊은 날을 회상하는 오래된 팝송이 있다. ‘Those were the days’는 1950년생 가수 메리 홉킨(Mary Hopkin)이 1968년에 발표한 노래이다. ‘청춘’을 회상하는 노래를 당시 ‘청춘’이었던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가수가 불렀다. 고음을 잘 소화하는 앳되고도 탄력 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우수 어린 멜로디에 따라 부르기 어렵지 않은 경쾌한 후렴구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귀를 파고든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잊고 지내던 ‘청춘’의 추억을 환한 햇살의 이미지로 떠올리게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y3KEhWTnWvE

Those were the days by Mary Hopkin

예전에 술집 하나가 있었는데(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 우리는 여기서 술잔을 들곤 했다(Where we used to raise a glass or two). 노래 속 주인공은 기억한다. 웃고 떠들면서 몇 시간을 훌쩍 보내고(Remember how we laughed away the hours), 앞으로 온갖 대단한 일을 해낼 거라던(think of all the great things we would do) 날들을. 그날들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We thought they’d never end) 우리는 언제까지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살 것 같았으며(We’d sing and dance forever and a day),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었다(We’d live the life we choose). 우리는 싸울 것이었고, 절대 지는 일은 없을 거라(We’d fight and never lose) 여겼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젊었고, 뭐든 뜻대로 해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For we were young and sure to have our way.) 때문이다.


‘Those were the days’는 이렇게, 지금보다 더 행복하거나 좋았던 과거의 어느 시절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겨보자면 ‘정말 좋은 때였다’ 정도 될까?


하지만 그 후, 세월은 우리를 지나쳐 빠르게 흘러갔고(Then the busy years went rushing by us), 세월에 떠밀려 오는 동안, 별처럼 반짝이던 신념도 잃어버리고 말았다(We lost our starry notions on the way).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날들은 어느새 가버리고 없다.


노래 속 주인공은 오늘 밤 문득, 그때 자주 드나들던 술집 앞에 섰다(Just tonight I stood before the tavern). 옛날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는 듯했고(Nothing seemed the way it used to be)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낯설었다(In the glass I saw a strange reflection). 저 외로운 여자가 정말 나인가(Was that lonely woman really me) 싶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이런 허무하고 쓸쓸한 감정으로 끝맺지 않는다. 그 술집 문틈으로 귀에 익은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Through the door there came familiar laughter)! 이윽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를 보았다(I saw your face and heard you call my name). 이렇게 반가울 수가. 주인공은 단숨에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간다. ‘가슴속에 품은 꿈은 변함없이 그대로인 걸 보니(For in our hearts the dreams are still the same) 우리는 나이는 들었지만, 현명해지진 않았구나(Oh my friend we're older but no wiser)’라고 읊조리며. 사람이 나이 든다고 자동으로 철이 드는 게 아닌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가 보다. 곧이어 ‘라, 라, 라, 라랄랄라~’ 하는 경쾌한 후렴구가 다시 반복되다가, 빛나는 그 시절을 향해 팡파르를 울리듯, ‘합창 행진곡’ 수준의 희망찬 분위기로 노래는 끝난다.


여담 하나. 이 노래의 원곡은 러시아 민요라고 한다. 이 곡은 여러 나라에서 번안되어 불렸는데, 메리 홉킨(Mary Hopkin)이 부른 노래는 원곡의 가사와는 다른 새로운 가사를 붙여 비틀스(The Beatles)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제작한 것이다.


최주연.PNG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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