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찾아가는 40년 차 화가, 양승순 씨(76)
40년 차 화가, 양승순 씨의 자화상
비가 연이어 와서 급작스레 쌀쌀해진 가을 초입. 서울 종로구 인사동, 역사 깊은 화랑들이 모여 있는 어느 빌딩의 지하에서 76세의 양승순 씨를 만났다. 그녀는 일주일째 여기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화랑 입구에 걸린 그녀의 자화상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하늘이 선물을 주는지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었어요. 지원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인사동 화랑가에서 제대로 한 번 개인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단체전에 가담하거나 공간을 지원받아 전시해온 게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큰맘 먹고 바로 대관 계약을 했는데, 공간을 다 채울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반 동안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죠. 그러고 나니 완전히 지치더라고요. 그때의 피곤함이 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같아요."
필자가 운영하던 교육원에서 강사와 학생의 관계로 만난 양승순 씨를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 사이 필자도 40대에서 50대로, 양승순 씨도 60대에서 70대로 앞 자릿수가 바뀌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수업은 한겨울 글쓰기 수업. 모든 게 꽁꽁 얼어붙었던 날, 양승순 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삶을 문장으로 풀어내며 마음을 녹여냈다. 그 원고는 6년 뒤 양세비란 예명으로 <완주를 떠나보내다>(부크크, 2017)라는 책으로 재탄생되었다. 묵혀두었던 오랜 감정과 원망을 봇물이 터지듯 활자로 옮겨나갈 때 힘들어했던 것에 비하면 자화상 속 얼굴은 그저 가볍고 해맑다.
전시장 반대편에는 모두를 향해 싱그럽게 웃고 있는 또 다른 그녀의 자화상이 있다. 그녀의 이전 그림들에서 보지 못한 두터운 붓터치와 생략이 보인다. 그제야 전시장을 빙 둘러보니 30점가량의 신작이 크기와 스타일에 있어 제각각이다.
늘 그려오던 방식이 신물 나서 변화를 꾀하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본 거라는 설명. 외면적인 화풍의 일관성에 신경 쓰기보다는 작품 세계 전체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 양승순 씨의 의도인 듯하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내린, 인생의 결정들
어느새 40년 경력이 된 화가. 그녀는 32살에 알게 된 한 남자의 어린 두 아이가 눈에 밟혀, 집에서 극구 반대하는 결혼을 밀어붙였다. 이후 그림이라도 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이 펼쳐져 힘든 시집살이를 버텨내며 그림을 그렸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기도 한 덕분에 지금의 작품 세계를 일궜지만, 미술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쉽다.
양승순 씨는 8남매를 키우느라 빡빡한 형편으로 고생하는 친정어머니를 보고 자진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취직을 했다. 아버지가 영문학과 교수였던 터라 살림이 궁핍했던 건 아니어서, 대학을 가겠다고 했으면 둘째 딸에게도 학비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승순 씨는 늘 ‘연민’이 과해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느라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곤 했다.
당시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며 하나 둘 강사 자리로 가는 것을 보고, 대학을 안 간 것이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가 인생에서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해서 결정한 두 번째 선택도 그녀의 40년을 좌우하며 회한을 남겼다.
"친정 식구들이 모두 말리는 결혼을 한 탓에 힘들다는 소리를 어디에도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딱 한 번 친정아버지에게 넌지시 속내를 비친 적이 있는데 중간에 아버지가 역정을 내시며 벌떡 일어나 나가셨어요. 한참 만에 서재로 부르셔서 “내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네 선택이지 않느냐? 더 이상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라고 잘라 말하셨어요. 그러면서 어른들에게 잘하라고 누누이 강조하셨죠. 그날 펑펑 울었어요. 이후 다시는 제 삶에 대해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네요. 그러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 제가 지금의 나인 것은 시어머니 덕분일까요? 제가 그렇게 고생을 안 했다면 그래도 나는 나였을까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그녀의 마지막 자문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힐 수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지나온 모든 괴로움을 글로 뱉어내며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났을 때 시어머니가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다.
"당신은 편하셨을 거예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셨으니까요. 그런데 한 순간 그리 또 편안하게 훌쩍 가시더라고요."
그녀의 그림 중 녹음 짙은 숲 속 호수 위에 그물을 드리우는 어부의 그림이 눈에 띈다. ‘내 마음의 갈릴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예수가 태어난 나자렛이 있던 곳. 그림 속 어부는 양승순 씨 내면의 갈릴리에서 무엇을 건져 올리려는 것일까? 예수는 베드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번에 그물에 낚이는 것은 양승순 씨 자신 이리라.
큰아들도 딸도 그 사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결혼해 낳은 막내아들도 성실하게 제 생활을 잘하고 있지만 아직 제 짝을 만나지 못해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차인다. 그래도 이제 양승순 씨는 자기 자신에게 연민의 방향을 돌리려고 애쓴다.
"얼마 전에 종종거리며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어요. 발 뒤꿈치를 다쳤을 때도 “너는 너를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남들을 위해 뛰어다닌 만큼 제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며 잘 돌봐야 하는데, 76세에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잘 가’라는 타이틀의 그림에서는 누군가를 먼 길로 훠이훠이 떠나보내는 어미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 큰 아들이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어요. 저렇게 바이 바이하고 자기 길을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표현되었나 봐요. (웃음)"
행자가 향하는 곳의 하늘은 푸르고 맑은 반면 어미가 서 있는 곳은 노을 지고 구름이 두텁다. 머리를 만지고 있는 그녀의 자세에서도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 이별에 대한 슬픔보다는 시간에 대한 서글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의 주관이 섞인 탓일까?
실제로 그녀는 체력이 전 같지 않다고 토로한다.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지 고작 십 년. 그동안 못해본 것을 이제부터 다 해보고 싶은데 어느새 몸은 지치고 기력도 떨어지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요새는 일을 완전히 쉬고 있는 남편이 내내 집에 함께 있는데,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대화도 많이 해서 친구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고 좋아요.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이에요. 일찍 퇴직하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는데, 소소하게 번 돈을 어느새 알뜰하게 모아 큰 목돈을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이제 둘이 남은 인생을 잘 보내려고 합니다."
진짜를 살다가, 또 다른 진짜를 찾아가는 순간들
하필 필자가 방문한 날이 작품을 철수시키는 마지막 날이었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전시장에서 양승순 씨의 남편이 초조하게 서성이다 이제 작품을 포장해야 한다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필자에게 미안해서인지 저이가 괜히 또 저런다는 표정으로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도 어느새 남편의 말에 동의하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웃으며 부부와 헤어지는 길에 필자는 기분이 묘했다.
살고 있는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진짜 인생이지 어디 가짜 인생일 수 있겠는가? 남의 인생일 리도 만무다. 그런데도 이제부터가 진짜 나의 삶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 존재하니 참으로 이상하다. 양승순 씨는 진짜를 살다가 새로운 또 진짜 삶을 10년째 살고 있고, 여전히 진짜를 더 찾아보려고 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찾아간다는 것이 갱년기를 막 지난 필자에게는 그저 아득하고 고단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그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양승순 씨에게는 시간이 모자라기만 하다. 그녀 내면의 갈릴리에 드리운 그물에 ‘진짜로’ 건져 올릴 것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