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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뉴스

[크크의 다시 읽기] #1

“내 성격은 적자생존의 결과물이라고?”

by 다시

책 제목들을 쓰윽 스캔해본다. 남편이 사둔 책들 중에 간혹 득템 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성격의 탄생’,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성격의 모든 것. 오호라! 이런 책이 다 있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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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고 신나서 떠드는데 남편 반응이 영 심드렁하길래 물었다.


“이 책 자기가 산 거잖아?”

“아니. 무슨 소리야? 난 진화에 관심 있지, 성격은 아니야.”

“말도 안 돼. 2009년 책인데 그때 난 책 살 여유 따윈 없었다고. 우길 걸 우겨.”

“성격은 당신 관심사이지. 난 관심 없어.”


그렇지. 남편이 관심 있을 리가 없지.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만족스러운 사람이니, 성격이란 것에 관심 있을 이유가 없다. 덕분에 결혼생활 25년 내내 속을 끓였다. 내 손으로 10년 전에 집어 든 책이라는 사실이 한심해서 힘이 쪽 빠지는데, 그걸 콕 집어 말하는 남편이 얄미워 화까지 난다.


맞다. 나는 늘 성격이 궁금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자란 내 성격의 원인을 찾으면 고칠 수 있을 줄 알고 헤매고 또 찾았다. 인과론을 신봉하며, 질문을 던지는 건 인간의 좋은 덕목이라고 배웠기에 머릿속에는 온통 분석과 규정과 비판이 가득했다. 해답들은 난무했지만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아 제자리만 맴맴 도니 자기혐오만 커졌다. 그렇게나 해묵은 숙제에 이 책의 무엇이 반갑고 신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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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성격(personality)이란 것의 구조를 정리해준다. 5대 성격특성(trait), 즉 빅 파이브가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이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정도, 수치가 다를 뿐이다. 빅 파이브란 성격을 구성하는 많은 특성들을 범주화한 것으로,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다. 빅 파이브는 심리학계의 각종 성격 분류, 유형, 요인 등을 평정하고 정설이 되었단다.


둘째, 성격은 진화의 산물이다. 즉 생존에 유리한 것만 남기는 자연선택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외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더 열정적으로 먹거리를 찾아 나섰고, 그 결과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먹거리가 풍족해져도 위험선호 성향 때문에 떠돌아다녀 더 많이 죽을 수도 있었다. 친화성도 마찬가지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은 호구가 되어 열등해지지만, 친화성이 낮은 사람들만의 상호 적대적인 세상은 유지될 수가 없다. 다시 친화성 높은 사람들이 살아갈 여지가 생긴다. 그러니 성격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셋째, 성격은 심리 메커니즘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뇌를 단층 촬영할 수 있게 되었고,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학의 도움으로 저자는 성격이 사람마다 고유한 신경시스템의 연결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외향성(extraversion)은 보상 메커니즘으로 강화된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을 때 얻게 되는 보상, 기쁨 같은 것에 대해 민감하고 이를 계속 추구한다. 신경성(neuroticism)은 위협에 대한 반응 메커니즘이다. 신경성이 높은 사람들은 예민한 경보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실성(conscientiousness)은 충동에 대한 억제 반응이다. 성실맨과 알코올 중독자를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친화성(agreeableness)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마지막으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은 정신적 연상의 광대함이다. 나와 남, 사물과 경계, 세계 간 경계를 넘나드는 성향을 뜻하는데 예술가적 기질과 비상한 정신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다.

내 성격은 내 생명이 시작되었을 때 탄생했다. 세상에 던져져 부모를 만났고 다양한 환경 아래서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신경성과 성실성, 친화성은 높아지고, 외향성과 개방성은 낮아졌을 것이다. 그 결과 위태로운 마음으로 경계하고 끝없이 노력하며 살았고, 왜 더 높은 성취에 도전하지 않는지, 왜 더 창의적이지 못한 것인지 자책하기도 했다.


저자 대니얼 네틀이 각 성격특성이 강한 사례자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생생하게 들려줄 때, 그 성격들의 특징적인 모습을 다양한 심리 실험과 추적 조사 결과로 설명해줄 때, 메커니즘의 작동방식을 논리적으로 보여줄 때, 조금씩 내 성격의 전체가 보였던 거 같았다. 진화론적 관점이 혼란을 정리해주고, 타고난 성격에 대한 인정을 도와주었다.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었다. 다시 내 탓하기를 반복할 때 멈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10년 전, 나는 힘겨웠을 것이다. 제목에 이끌려 기대감을 안고 이 책을 샀을 것이다. 읽었을까? 읽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위로를 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지난 10년의 인생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성격으로 사느라 터덕댔지만 그 성격이 여기에 데려다주었다.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달리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서사를 바꾸라고. 나이 오십. 새로운 라이프 스토리를 쓰기에 늦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이수정 - 크크.JPG 다시뉴스 필진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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