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환상과 두려움 사이, 남해 귀촌 6년 차 박민숙(39)씨
경상남도 남해군. 경상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밀도 120명(1㎢)의 한적한 마을이다. 부드럽게 넘실대는 남해 바다를 따라 다랭이 논(작은 계단식 논)이 펼쳐지는 곳, ‘독일마을’과 ‘멸치쌈밥’이 유명하고, 탤런트 박원숙 씨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는 곳. 이곳이 내 마음에 들어온 이유는 단순하다. 6년 전, 친하게 지내던 30대 부부가 돌연 서울을 떠나 정착한 곳이기 때문이다.
젊은 층이 귀촌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무섭게 치솟는 서울의 집값,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 이 어려운 생활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무한경쟁에서 자발적으로 뛰쳐나간 대안세력’의 이미지를 부여하기도, 누군가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는데…’ 하며 혀를 차기도 한다. 나 역시 일상이 지칠 때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생각하기도, 한편으로는 서울을 벗어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덧 남해 귀촌 6년 차가 된 박민숙(39), 윤준(42) 부부에게 듣고 싶었다. 막연한 선망이나 두려움을 넘어, 지금 남해에서 지속되는 그들의 삶에 대해. 남해에서 자영업자로 살아가며 그들이 경험하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금요일 오전, 화상회의 사이트 줌(Zoom)으로 박민숙을 만났다.
Q: 남해 살이를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죠?
"2016년에 갔으니까, 이제 6년 차네요. 남해에 올 때 아들이 3살이었는데, 어느새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갔고요."
Q: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뭐였는지 궁금해요. 왜 하필 남해였는지도요.
"남편이 요리사인데, 레스토랑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근데 서울에서는 임대료가 너무 비싸니까 위험 부담이 크잖아요. 마침 남해에 귀촌한 선배 부부가 있어서, ‘남해에서 레스토랑을 하면 어떨까’ 상의하다가 결정하게 되었어요.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컸죠. 아이가 태어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고, 주말에는 나들이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경쟁과 불안에서 자유롭기 힘들고, 너무 바쁘고, 가까이에서 자연을 접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잠시 생각하다) 근데 너무 포장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해요. 전문직으로 살았으면 안 내려왔을 수도 있는데… (웃음) 젊은 분들이 귀촌하는 건, 보통 먹고사는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또 보면 포장을 잘하거든요. 예쁜 풍경 사진 올리고 ‘내가 시골에 사는 이유’, ‘시골이 왜 좋은가’ 이런 말 해시태그 하고. (웃음)"
사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던 대상은 남편인 윤준이었다. 남해로 가자고 먼저 제안한 당사자라고 들었기 때문. 그러나 윤준은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홍보에 엄청난 도움이 될 여행잡지 인터뷰들도 거절했다고. ‘포장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는 박민숙의 머뭇거림은, 남편인 윤준의 ‘할 말 없음’과 비슷한 기조 이리라. 두 사람은 사람들이 귀촌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귀촌 당사자가 ‘시골에 대한 단순한 낭만’을 자극해 자신을 상품화하는 것도 경계했다.
Q: 꿈에 그리던 레스토랑을 남해에서 차릴 수 있었겠네요.
"남편은 이태리 유학 시절부터 ‘평범한 사람들도 여러 음식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대요. 저도 남편이 해주는 요리를 먹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고요. 부자들만 고급 음식을 먹으란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코스요리를 2만 5천 원에 대접하는 레스토랑을 했어요. 식전 빵, 수프,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파스타, 케이크와 차 다 해서. ‘그렇게 팔아서 뭐가 남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남해까지 내려왔으니까 그 정도 모험은 해보고 싶었어요."
Q: 남는 게 있었나요? (웃음)
"결론적으로는 도시에 있을 때보다 돈도 더 벌었고, ‘여기까지 누가 오겠어’ 했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고민이 되기도 해요. 점점 지역에 트렌디한 음식점들이 많이 생기는데, 서울보다 훨씬 비싸게 받는 곳이 많거든요. 그래도 한번 왔다 가는 관광지이니까 사람들은 큰 고민 없이 돈을 쓰고, 음식점도 그걸 노리고 비싸게 받고, 그런 걸 보면 우리의 시도가 의미 있었던 건가…."
Q: 지금은 레스토랑을 접고 카페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식당에서 1분만 걸어가면 바다인데, 서울에서 가끔 바다 보러 갈 때보다, 더 바다를 안 갔더라고요. ‘아이랑 자연을 누리려고 왔는데, 이게 뭐지’ 싶었어요. 평일에는 점심 영업만 하니까 나은데, 주말에는 저녁 영업을 하니까 저녁 8시까지 쉴 틈이 없더라고요.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하루 종일 왔다 갔다…."
1분 거리의 바다를 보기 힘든 일상, 이는 단순히 물리적 바쁨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지가 일상이 되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여행지만큼의 감흥을 느끼기 힘들다. 게다가 박민숙은 남해에서의 생활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오래된 농가주택들 속에서 살 집과 가게 자리를 구하고, 수리하고, 가게 메뉴와 영업시간, 쉬는 날을 결정해야 했다. 대단지 아파트,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도시의 획일성이 사라진 대신, 스스로 결정하고 몸을 움직이는 삶이 남았다. 그 삶이 뿌듯함만큼이나 부담감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터. ‘이제는 일을 조절해서 자연을 누리며 살고 싶다’ 말하는 박민숙, 윤준 부부는, 지금 카페를 운영하며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 중이다.
Q: 남해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뭘까요?
" 제일 힘든 건,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귀기가 힘든 거요. 워낙 작은 동네이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만나도 익명성이 보장이 안되니 조심스러운 점이 있어요. 어딜 가든 “현지인이세요? 아니면 고향이 여기세요?” 물어보는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서울은 워낙 다양한 사람이 몰려들어서 구분이 안되지만, 여기는 현지인, 귀촌인, 다문화가정으로 딱 구분이 되어있거든요."
Q: 남해에 살면서 좋은 점은 뭐예요? ‘서울을 떠나서 진정한 나를 찾을 거야’ 다짐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웃음)
"확실한 건, ‘나’를 찾을 시간은 많다는 거예요. (웃음) 남해는 6시만 넘으면 불 켜진 가게가 없거든요. 저희 같은 경우는 주말에는 바쁘지만, 평일에는 일찍 퇴근했고요. 도시에 있으면 그 시간에 친구 만나고 어디 다니느라 바빴을 텐데, 여기서는 차단되는 게 많잖아요. 자기 시간이 많으니까 자연스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왜 그렇게 열을 냈을까’, ‘지금이라면 그때보다는 너그럽게 대처했을 텐데’ 싶기도 하고요."
Q: 남해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육아였다고 했는데, 아이 키우는 건 어때요?
"아이를 경쟁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는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키우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학원이 없어요. (웃음) 30-40분 차로 달려서 소도시로 가야 학원이 나오거든요.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다만 지역 안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문제거든요. 남해도 교사,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펜션, 카페, 음식점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아이가 언젠가는 대도시를 경험해보고, 도시에서 살지, 남해에서 살지 스스로 결정하길 바라고 있어요."
그는 남해 살이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에 솔직했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어려움에 대해, 친구와 쇼핑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고요한 시간에 대해, 사교육 없이 남해의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들에 대해. 남해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가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박민숙은 ‘어떻게 이곳에서 더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노인회관에서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고, 자신을 위한 글을 쓴다.
Q: 두 분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세요?
서울 집값 때문에 이제 진짜 못 돌아가겠구나 싶어요. (웃음)
Q: 정말 그러네요.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으세요?
귀촌하며 생각했던 것은 ‘담백하게 살고 싶다’는 거였어요. 어디에 폐 안 끼치고, 내가 해야 하는 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 지금도 그런 마음이에요."
서울을 떠나 제주로 향하는 젊은 세대가 주목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경쟁 일변도의 삶을 벗어나 아름다운 섬에서 소박하게 살겠다는 이들의 ‘용기’에 많은 이들이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시작된 제주 열풍은 2020년, 제주의 전출인구가 전입인구를 앞지르며 막을 내리고 있다. 제주 내의 일자리 부재, 대규모 자본 진출로 인해 소규모 자영업자가 버티기 힘든 구조, 몇 배로 상승해버린 집값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에서 살 것이냐, 서울 밖에서 살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부부의 시간 속에는 서울의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의 현실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유롭기 힘든 경쟁 위주의 교육, 지역 내의 일자리 부족 등 여러 사회적 현실이 곳곳에 얽혀있다. 그러나 부부의 삶을 단순히 ‘사회적 현실’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부부는 주어진 삶에 체념하거나 순응하는 대신, 선택의 연속이었던 남해 살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가고 있다. 자신의 삶이 단순한 환상이나 막연한 두려움으로 비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며. ‘담백하게 살고 싶다’는 박민숙의 소망은 그 조심스러움과 맞닿아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남해 여행을 갔다가 박민숙, 윤준 부부의 레스토랑에 갔다. 따뜻하고 정갈한 음식이 세팅된 창밖으로, 은빛 모래로 둘러싸인 바다가 반짝였다. 티라미수를 곁들여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한껏 대접받은 느낌에 몸이 노곤해졌다. 내가 처음으로 이태리 코스요리를 경험한 날이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던 부부의 꿈이 내게 닿았던 순간임을, 나는 인터뷰가 끝나고야 알았다.
작성자: 이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