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사막을 향한 큰 걸음
마흔아홉에 ‘갱년기’라고 부르는 심신의 변화가 급격하게 찾아왔다.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단순히 노안이 오거나 피부에 탄력이 떨어지거나 머리카락이 부스스해지는 정도였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 서글픔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깨와 목에 통증이 사라지지 않거나 책상머리 일을 조금만 심하게 하면 목이 안 돌아가는 상황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수시로 스트레칭을 해주고 큰돈을 들여 침대를 새로 바꾸어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리창 대청소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두어 번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는데 더 이상 팔을 뻗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만큼 내 몸이 쓰이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똑같은 체형과 몸무게를 유지해왔는데 갑자기 피부지방이 늘고 복부 비만도 왔다. 정기검진에서는 ‘당뇨 경계’라며 동맥경화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검진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네가 무슨? 그렇게 운동하고 그런 식으로 먹는데?”
변화는 몸에서만 오지 않았다. 사춘기로 돌아간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감정 기복에 시달리는 날들이 일 년 넘게 계속되었다. 오랜 세월 심리치료사로 산 덕에 나는 감정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면 감정을 가라앉히거나 치우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데 내면의 작동을 뻔히 아는데도 감정이 하루 종일 꼬리를 끌며 이어졌다. 분노도, 서운함도, 슬픔도 계속 남아서 나를 들들 볶았다.
긴 세월 갈고닦은 것들인데 이렇게 한 순간에 폐기 처분되고 마는 것일까? 나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었지만 더 이상 나 자신을 ‘알던 사람’ 취급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생소하게 나를 만나야, 다시 모든 것을 맞춰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일단 일부터 그만두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시간을 버는 게 더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나야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인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여기까지만 하고'로 반복하던 습관을 멈추고 새로운 것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보다 먼저 퇴직한 남편 앞에 색 바랜 세계지도를 찾아와 바닥에 펼쳐놓고, 가보고 싶은 곳 중 가장 낯선 땅을 골라 보라고 했다. 일상과 습관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온 흐름을 툭 끊어보고 싶었다. 남편은 죽기 전에 우유니(Uyuni) 사막을 꼭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런데 우유니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우유니에 가려면 미국에 먼저 가서 중남미 어느 곳인가를 경유해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 떨어진 다음, 거기서 다시 국내 항공편으로 우유니 도시까지 가야 한다. 우유니 염전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소금사막에 물이 차는 우기(12~3월)에 방문해야 하는데, 적당량의 비가 오란 법이 없으므로 허탕을 치기도 한다고 들었다. 모든 걸 운에 맡긴 채, 단지 그 사막 하나를 보려고 비행에 비행을 거쳐 돈 들이고 고생해 거기에 가야 하는 걸까?
망설여졌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곳은 평생 가볼 수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패기는 줄고, 겁은 많아지고, 안전 지향 주의자가 되니 엄두가 난 지금 움직여야 했다. 나는 우유니로 가는 항공편 여정대로 미국에서 먼저 여행을 하고, 멕시코를 구경한 뒤, 우유니를 찾아가는 것으로 남편과 의논했다. 우유니 사막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져도 그러면 최소한 후회는 없을 것이다.
2017년 3월 새벽 3시, 우리는 그렇게 여러 곳을 거쳐 마침내 볼리비아 라파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날씨가 차가워서 덧입을 옷을 빨리 꺼내 입어야겠는데 수하물 컨테이너 벨트에서 우리 짐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타고 온 콜롬비아 항공사 아비앙까 직원에게 물으니, 경유지인 보고타 공항에서 우리 짐이 긴밀한 조사를 받기 위해 별도로 남겨졌다고 한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요?”
우유니를 향한 여정이 시작부터 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