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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11. 2022

[고구마 세 개] #6

돌아온 성철 씨의 스스로 구제법 1

성철 씨가 돌아왔습니다. 연말 특사, 일 년 하고도 두 달만의 귀환입니다. 성철 씨는 ‘그 안’은 ‘두 번 다시 가면 안 되는 데’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해서 빨리 나올 수 있게 되었다며 어느 정도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모범’이란 평가를 획득한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성철 씨는 알고 지내던 선배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빌려 간 돈이나 갚으라’는 선배의 말에 그를 때리고 협박해서 금품을 빼앗은 일로 구속되었습니다. 경계선 지능 장애였던 선배를 대상으로 차용을 빙자한 갈취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결국 성철 씨 부모가 피해액을 변제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본 후에야 일심 형량이 반으로 줄었고, ‘모범’적인 ‘그 안’ 생활로 특사를 받아 예정보다 일찍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를 만나 돼지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와서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성철 씨는 대뜸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안에서 고생 좀 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상 좀 준 거죠.”

     “상이라고?”

     “그럼요! 제가 모범적으로 생활을 했으니까... 저 진짜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잘했거든요.”

     “그래. 자기에게 상을 주는 일도 중요하지. 이번에도 제주도 갔다 왔어?”


성철 씨의 형님들 그리고 여행 경비 마련법


     “그 안에 같이 있던 형님들 사는 데 다녀왔어요. 형님들이 저보다 먼저 나갔거든요. 나가면 다 같이 얼굴 한번 보자고 해서 그래서… ”

성철 씨는 항소 때문에 일 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 안’에서도 세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는데 그 짤막짤막한 시간 동안에 ‘형님’ 인맥이 생긴 것이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걸 보니 꽤 가까웠었나 보네?”

     “그 형님들이 제가 방에서 막내라고 잘 챙겨 주셨거든요.”

     “뭐 같이 일 같은 거 하기로 한 건 아니고?”

     “일할 데 없으면 자기한테 오라는 형님이 한 분 계시긴 합니다.”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한 거야?”

성철 씨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단호하게 ‘벌었다’고 합니다. 나오자마자 무슨 알바라도 한 거냐고 물으니, 뭐 그런 셈이라며, 나중에 다 갚아야 할 돈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성철 씨입니다. 경험에서 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순간입니다. 다시 물으니 그제야 실토합니다.

     “폰 3대, 깠어요. 폰 3대 넘겨주고 백칠십만 원 받아서 그 돈을 좀 쓰면서 다닌 거예요.”

마치 갖고 있던 물건을 전당포에 잡히고 돈을 좀 융통해서 썼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입니다.

     “뭐? 폰깡을 했다고? 그럼 얼마를 갚아야 하는데?”

     “뭐 한 삼백 될 거예요. 매달 나누어서 갚으면 돼요. 이제 아르바이트할 거니까 금방 갚을 수 있어요.”

     “아이고! 나오자마자 빚쟁이가 된 거네. 그런 거 못 갚으면 바로 신용불량자 되는 건 알지?”

     “에이, 저도 그 정도는 갚을 수 있어요.”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의 덫


문제는 돈 삼백만 원만 갚으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갚아야 할 빚이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데다가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한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 막 사회로 돌아온 그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행은 상대도 안 해 주고, 사채는 겁나고, 손 내밀 가족도 없고, 그래서 급전 이삼십만 원이 필요한 갓 스물이 된 청춘들은 ‘내구제 대출’이라는 덫에 이렇게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내구제 대출’이란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로,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신용카드, 휴대전화, 노트북, 자동차 등을 할부로 사 대부업자에게 넘기면 대부업자가 물건을 팔아 수수료를 챙기고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휴대전화의 경우 대출자 본인 명의로 개통을 진행하는 조건으로 할부금의 일부를 선지급 현금으로 '당겨' 받게 됩니다. 일명 ‘폰깡’, 성철 씨가 여행 경비를 마련한 ‘돈벌이’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구제 대출은 ‘대출’이라는 명칭이 붙긴 하나 불법 사금융이기 때문에 돈을 빌린 사람과 빌려준 사람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명명백백한 ‘범죄’입니다. 


누구는 백만 원짜리 핸드폰 두 대를 넘겨주고 칠십만 원을 받았다고 하고, 누구는 세 대를 넘겨주고 백오십만 원을 받았다고 하는 걸 보면 사람에 따라 그 금액도 달라지는 고무줄 대출입니다. 당장 필요한 목돈을 받아 쓰고 나중에 할부로 갚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대출업자는 손에 들어온 휴대전화로 소액결제 한도만큼 게임머니, 상품권을 구매하여 되팔아 현금을 챙겨 잠적해 버립니다. 보이스 피싱에 쓰이는 대포폰도 이렇게 유통된 ‘내구제 폰’이 대부분입니다. 

불과 몇 달 후면 자신이 모르는 수백, 수천만 원 빚으로 통신사, 카드사, 추심사로부터 독촉을 받고, 경찰서의 출석요구서까지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빚 고삐를 쥔 이들을 위해 청춘을 다 소진할 일만 남았습니다.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의 본질은 ‘나를 스스로 구속하는 대출‘입니다.


사회적 불이익보다 두려운 정신병자라는 낙인


처음 만난 성철 씨는 ‘천 원만 빌려 달라’ 던, 그래서 천 원을 빌려주면 ‘삼천 원을 더 빌려 줄 수 없냐’고 묻던, 간도 작고, 목소리도 작은 데다가  말도 더듬던 깡마른 소년이었습니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 가는 일도 힘들고 수업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한 학기 만에 학교에 더 이상 안 가기로 했습니다. 같이 학교를 그만둔 영기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밥차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몸이 건장한 영기는 ‘노가다’ 일명 일용 노동직에 나가면서 꼬박꼬박 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체격이 작은 성철은 편의점 알바도 구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영기의 ‘식객’이 되었습니다. 영기가 일을 그만둔 뒤에는 밥차를 찾는 일이 더 잦아졌습니다. 영기가 일을 그만둔 이유는 본인 주장대로 라면 ‘가족’ 때문입니다. 월급제로 일하던 영기는 미성년자라서 통장 개설이 안 된다는 아버지 말을 믿고 아버지 명의로 급여통장을 개설했는데, 몇 달이 되도록 월급을 구경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확인해보니 이미 ‘가족’이 다 찾아서 써버린 뒤였습니다. ‘‘쌔빠지게 일해서 그 양반 도박 자금이나 댈 수는 없다"며 일을 때려치운 영기는 한참을 울다가 자취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영기가 폭발하던 날, 자기 이야기도 들어보라며 성철이 대화를 요청해 왔습니다. 이유 없이 자주 화가 나고, 한번 화가 나면 미친 사람처럼 욕을 하고, 앞에 있는 사람이 할머니든 엄마든 형이든 상관없이 욕을 하다가 어느새 칼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성철은 손을 떨었고, 연신 담배를 피우며, 얼굴을 심하게 찡그렸습니다. ‘아무래도 네 속에 화가 가득해서 그 화가 널 잡아먹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스스로도 화를 내는 자신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지만 모르겠다고만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애들이 자길 무시하고 선생님들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 같아서 학교 가기도 싫었는데, 집에 오면 또 형이 욕하고 때렸답니다. 그래서 같이 화내면서 대들다가 집을 나와서 안 들어가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합니다. 분노와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아 심리 검사를 권했지만 자기는 절대 정신병자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던 것이 삼 년 전의 일입니다.


출소하자마자 폰깡을 해서 돈을 마련한 일이나, 그 돈으로 재소 동기를 만나러 간 일이나, '그 안'에서 매달 똑같은 내용을 편지로 써 보내던 일을 조각조각 맞추어 보니 더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레 이번에는 정말 검사 좀 받아보자고,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불이익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좀 다그쳐보았습니다. 

     “저 정신이상은 아녜요. 저는 제가 잘 알아요. 전 그냥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이해가 느린 것뿐입니다.”

     “정신이상이라는 게 아니라 얼마나 느린지 좀 더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호형호제와 심리검사


     “전 그런 검사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이렇게 샘들이 저 만나서 제가 하면 안 되는 거 알려 주시면 돼요. 그래서 그런데 샘이 제 형님이 되어 주시면 안 될까요?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안 되어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자기 삼겹살 불판 앞에서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90도로 꺾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제 큰형님 하시는 겁니다. 큰형님!!”

졸지에 서른다섯 살 차 동생을 다 두게 되었습니다.


'호형호제'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검사를 받아 볼 것을 다시 권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떡해서든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판단자료가 필요했습니다.

     “검사받는 거 하고 정신병자 되는 거는 상관없는 거지요? 진짜죠?”

피검사를 해서 몸에 다른 병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처럼 이건 그저 마음 상태를 알아보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몇 번을 설명하자 성철 씨도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그럼 제가 좀 더 생각 좀 해 볼게요. 집에는 이야기 안 할 거예요. 어차피 식구들은 검사받을 필요 없다고 할 거라서… 돈도 없을 거고요.”


심리검사가 정신병자 낙인인 줄로만 알고 있던 이삼 년 전 상황에 비하면 큰 진척입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몸으로만 부딪치고 보니 자신의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서의 경험이 그나마 그걸 알게 한 모양입니다. 


*성철 씨의 그 이후 이야기가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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