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Aug 12. 2022

[고구마 세 개] #7

돌아온 성철 씨의 스스로 구제법 2

돌아왔던 성철 씨가 다시 사라졌습니다. 인지능력 검사를 받기로 한 날인데 연락이 되지 않아 수소문해보니 다들 ‘모른다’고 했습니다. 검사에 대한 부담이 생각보다 컸나 봅니다. 


한 달이 좀 지났을까 싶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성철 씨는 전화기 너머에서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그만두래요. 여기서 그만두면 일할 데가 없어요.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일단 감정을 추슬러 울음을 그치게 해 놓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사보다 돈 벌어서 돈 갚는 일이 먼저인 것 같아서 아파트 공사 현장 일을 시작한 지 삼 주째랍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현장 반장이 그만두고 나가라고 구박을 했다는 겁니다. 매일 아침 일하러 가면 ‘아직 안 관두었냐?', '너랑은 같이 일 못하겠다', ‘다른 현장에 가서 기본 좀 배우고 와라’ 하면서 그만두라고만 하는데,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성철 씨의 슬픔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성철 씨가 이렇게 분노를 표출한 게 얼마 만인가 싶습니다. 


일할 때는 담배 피우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요?


거기서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일명 ‘닥트 공’. 새로 짓는 아파트에서 에어컨 바람, 보일러 바람을 보내주는 함석 길을 만드는 일입니다. 공사 현장 일이 다 그렇지만 일하는 사람끼리 합이 잘 맞아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철 씨가 그 일을 어떻게 삼 주나 했을까 놀라웠습니다.



성철 씨는 집중을 잘하지 못합니다. 어렵게 집중해도 지속시간이 이십 분을 넘기 어려워서 실내 인테리어 철거 막일을 할 때도 반나절 만에 그만두어야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해고 사유는 이십 분마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통에 일을 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장이 쉬라고 할 때까지는 계속 일해야 하는 거’라고 했더니, ‘일이 없어서 잠깐 담배 피우고 온 거’라고, ‘하라는 거는 다 했다’고 항변한 적이 있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것도 반장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고, 휴식 시간에만 담배를 피우는 게 현장의 기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더니, 다른 아저씨들은 담배 물고 일을 해서 자기도 담배 피워도 되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건 선임이나 전문가들 특권인 거고, 이제 일 다니기 시작한 신참은 알아서 눈치껏 해야 한다고 하니 ‘알려주지도 않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아냐’며 막막해하면서 ‘그럼 나는 막일도 못 하는 거냐’며 울먹이던 성철 씨였습니다. 


하긴, 따지고 보면 그가 스무 살 넘게 세상을 살면서 건설 현장 일조차 눈치껏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크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죠!


초등학교 때부터 경계선 지능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전국을 다니며 건설 현장의 전기 공사 일을 하던 성철 씨 아버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애들은 어릴 때는 다 그래, 크면서 다 좋아진다. 나도 어릴 때는 그랬다’는 자전적 경험까지 더해져서 성철 씨는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특성화 고등학교 전기반에 진학했지만, 수업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또 시험 때마다 꼴찌인 자신이 부끄러워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받아왔던 수모와 무시, 비난 같은 것들이 작은 계기라도 있으면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고, 자신이 폭발하면 부모님도, 또래들도 더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면서부터 화난 표정과 말투가 성철 씨의 캐릭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넘어서 법무부 보호 아래 놓이는 바람에 최소한의 사회적 맥락을 강제로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덕(?)에 지난 삼 주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철 씨는 일하면서 많이 힘들어했지만 변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다른 지역에 가서 컨테이너 숙소 생활을 하면서 한 달 넘게 버틴 것 자체가 그에게는 기적 같은 변화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일부지만 대출 빚을 갚았다고 통화 중에 말할 때는 특유의 자부심마저 묻어났습니다. 이제 성철 씨도 밥차 졸업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럼 저도 장애인 거예요?


현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성철 씨는 바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는 처음인데요? 뭘 하라는 건지 하나도 몰라서 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큰일 났어요!


상담실 문을 열고 나온 성철 씨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성철 씨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봉사자에게 결과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중도의 지적장애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수치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웩슬러 지능검사의 경우 70~79 사이의 지능이 기록되면 ’ 경계선 지능’이라고 봅니다. 경계선이라는 말은 평균치와 그 이하 사이 어디쯤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경계선 아래 단계가 경도 지적 장애, 그다음이 중도 지적 장애입니다. 경도부터 사회복지 지원을 받는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활동가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치여서 검사를 한 의사에게 물어보니 의사도 의아해서 확인해 보았다며 문제에 반응하는 태도까지 종합해서 나온 결론이라고 말합니다.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던 것이 정말 잘한 일이었을까 싶을 만큼 충격이 컸습니다.

제가 정말 이렇다고요? 정말? 이 정도인지는 몰랐는데요.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성철 씨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아, 진작에 받았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받지 말라고 해서… 이번에 제가 교도소까지 갔다 오니까 할 수 없이 그럼 받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싶은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금 어눌하고 행동이 느리고 또래보다 많은 게 더뎌도 그저 크면서 좋아질 거고, 이 사회의 수많은 일 중에 제 수준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서 먹고살 만하면 되고, 그러다가 짝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러면서 살면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며 자녀의 인지검사에는 소극적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성철 씨의 아버지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나서야 결국 좀 더 세밀한 돌봄과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다 듣고 난 성철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 더 일찍 이 검사를 받을 걸 그랬어요. 제가 그 형보다 더 심한 거죠? 그럼, 저도 장애인 거잖아요 그. 형보다 더 심한 장애인.... 그러니까 멀쩡한 제가 장애인을 괴롭힌 게 아니었던 거잖아요!


성철 씨가 돈을 빼앗았던 선배는 다른 장애도 있었지만, 지능은 경계선이었습니다.

제가 장애인한테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벌을 더 많이 받은 거잖아요. 그런데 저도 장애인이라는 거잖아요. 제가 더 심한 장애인이라는 거잖아요. 그러면 비장애인이 장애인한테 죄지은 게 아니라 장애인이 장애인한테 죄지은 거니 벌을 덜 받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아, 진작에 사고 치기 전에 나도 장애 판정을 받았으면 그렇게 오래 그 안에 안 있어도 됐던 거잖아요.


성철 씨는 그렇게 며칠 동안 뒤늦은 장애 판정을 억울해하다가 다시 일하러 다른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고는 빚을 갚아나갈 때마다 전화를 합니다.

이제 칠십만 원 정도만 갚으면 돼요. 다 제가 일해서 갚은 거예요. 다 갚고 나면 큰 형님한테 삼겹살 쏠게요.


맨몸으로 이 세상을 부딪치며 그만큼 상처 입으면서 세상을 뒤늦게, 천천히 배워 나가는 성철 씨를 보면서, 좀 더 일찍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좀 더 일찍 세상을 살아갈 눈치와 기술을 배우게 할 수는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 노래]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