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 이후 달라진 죽음에 대한 가치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에게 죽음은 ‘막연함’ 그 자체였다. ‘사람은 죽으면 어찌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초등학생 때는 막연하게 ‘죽음’에 대해서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옆에 있던 엄마를 보고 죽으면 안된다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예견을 한 것 마냥. 이러한 막연한 죽음에 대한 가치관은 ‘엄마의 죽음’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엄마는 2022년 나의 첫번째 임용고시를 치기 10일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 한번 엄마가 계셨던 요양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그 연락도 내가 직접적으로 받은 건 아니고, 대학교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동생의 전화로 울먹이는 목소리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에 전화가 온거라 울지말고 집가서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교실영어연습’이라는 교과목을 수강하였고, 임용고시 일반영어 기출문제를 풀고 그 지문을 요약하는 과제가 매주 있었다. 그런데 일단 먼저 교과 담당 교수님께 엄마의 사정을 전달한 후 과제를 담주에 제출하기로 말씀을 드렸었다. 그 외에도 내가 해야할 것 들을 미리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자세히 그날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신 없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고비를 넘긴 것인지 아니면 그냥 버틴것인지 흐지부지 넘기셨다.
그러고 돌아가시기 직전(공교롭게도 2023학년도 수능 전날), 아빠는 사업상 서울에 계셨고, 여동생은 병원 실습으로 인해 서울쪽에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또 연락이 온 것이다. 병원에서의 연락은 상대적으로 바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여동생이 전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 실습으로 타지에 있다보니 여동생이 그날 병원에 내 번호를 주었고,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한 후 그 뒤의 모든 연락은 나에게 오도록 하게 해두었다. 솔직히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돌아가시기 직전 연락이 왔을때는 솔직히 이러다가 또 넘기시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였다. 난 당시 그날에 대해서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11월이 넘었는데도 집에 모기가 있어서, 병원에서 전화오고 난 뒤 할머니랑 모기를 전기모기채로 잡고 있던 도중 병원에 전화가 왔다.
“2021년 11월 17일 저녁 9시 30분 000 환자분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멘트가 내 귀에 들렸다.
6개월전 한번의 고비로 인해서 난 이모들에게 연락을 했고, 이모들은 우선 장례식장을 알아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집근처 종합병원 장례식장이 할인된다는 소식을 들었다.(하지만 막상 엄마의 장례기간동안 내가 들었던 혜택보단 크진 않았고, 아직도 부산시민장례식장에서 하지 않았던게 솔직히 엄마한테든 조문온 분들한테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 병원에서의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나는, 할머니에게 덤덤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덤덤하게 옷을 입고 택시를 잡고 엄마가 계시던 요양병원으로 갔고, 택시를 타는 동안에 가족과 친척들에게 연락을 드렸다. 당시 코로나였기 때문에 엄마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었고(6개월 전에도), 마지막 면회도 병실 앞 유리문을 두고 간호사의 전화로 말을 하시지 못하던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인사를 한게 다였다.
병원에 도착하여 엄마의 시신을 직접 옮겨야 했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깐, 병원 1층 한 방에 문이 열린채 싸여진 엄마의 시신이 이동식 베드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당시 코로나였기 때문에 환자 외엔 출입이 엄격하였기 때문에 병원 로비에는 관련 병원 관계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저녁 10시가 다되어가니 병원 로비도 밝지 않아 더 쓸쓸해보였다. 엄마의 모습을 보지 않고 하얀 천으로 싸여져 있었기 때문에 이성을 지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병원에서 여러가지 설명을 듣고, 사설 구급차인지 요양병원 구급차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시신을 태우고 미리 연락해놨던 동네 종합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구급차에선 이모가 전화가 와서 출발했다고 연락이 왔고(아빠랑 여동생은 서울쪽에 있었고, 이모는 사천시라는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삼천포 옆동네여서 1-2시간이면 올 수 있었다.), 이모가 상조회사에 다 연락했고 알아서 할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난 몇명한테 적당히 부고의 사실을 전달하였다. 부고의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대부분 당황하였을 것이며, 특히 대학교 이후로 알게된 지인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난 엄마의 아픈 상황을 주변 지인들에게 거의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이유는 엄마의 아픔으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운 시선들이 싫었고, 그것을 말함으로 인해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엄마가 아팠던 사실을 몰랐던 몇 지인들은 당황하였으나, 다행히 연락할 당시에는 크게 더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엄마를 안치실에 옮기고 직원분들의 설명이 이어졌고, 영정사진이 필요해 난 영정사진 담당하시는 분의 차를 타고 집으로 엄마 사진을 찾으러 갔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나의 호구조사를 하다가 우연치 않게 나의 친한 친구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시면서 사진을 무료로 큰사이즈로 업그레이드 해주셨고, 난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집에 있는 영정사진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엄마 사진이 정말 크다는 걸 알 수 있고, 그때마다 친구 HJ의 삼촌분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여차저차 상조회사에서도 오고, 장례식장이 어느정도 세팅이 되고 사천에서 이모들도 왔다. 다들 덤덤하였다. 아마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근데 그냥 다 장례식장에 대한 경험도 많이 없고 해서 다들 정신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막내 이모의 둘째 아들, 즉 사촌동생이 고3이었고, 담날 수능이었기 때문에 점심 도시락으로 전복죽을 쒔다. 하지만 엄마의 소식 때문에 그걸 들고 온거였다. 당연히 사촌 동생도 수능을 포기하고 그냥 온 것이었다. 수시로 이미 학교를 합격한걸로 알고 있었고, 수능 최저 등급이 필요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쨌든 이모가 들고온 죽을 모여서 먹고, 해야할 것들 정리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내가 해야할 것들이며 서류들이며 시키는 대로 하였다.
구급차에서 그냥 간략하게 연락을 돌렸지만, 장례식장에 와서 본격적으로 연락을 돌렸다. 당시 코로나였고,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솔직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지 이런 연락을 될지 걱정이 조금 되었다. 그래서 연락도 최대한 엄마의 아픔을 알고 계셨던 몇 분에게만 말씀드렸고, 친구들도 몇명한테만 알아서 전달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부고 소식을 전했다. 부고 소식을 전하는 상황에서도 뭐라고 전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서울에 있어서 당장 오지 못하는 여동생과 아빠없이 친가, 외가 친척들 사이에서 그냥 최대한 무덤덤해보이려고 이성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상주였던 내가 슬퍼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마냥 슬퍼한다고 엄마가 살아돌아오지도,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장례식 첫날은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본격적으로 장례식을 하였다. 당시 평일이라 오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아 사소하게 챙길 것들이나 상조에서 말하는 것들이나 제사를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점심쯤 입관할 시간이 되었고, 유리벽 너머로 본 엄마 이후로 처음으로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엄마는 상조회사에서 입혀준 마지막 옷을 입고 누워계셨다. 최대한 이성을 잡고 있으려고 했으나, 외할머니부터 울기 시작하면서 나도 눈물을 흘렸다.
당시 내 감정이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냥 ‘죄송함’이 제일 컸다. ‘이르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내 모습이 못났고, 아픈 엄마를 수시로 뵈러가지도 못한 것도 죄송했고, 잠깐 병수발을 들면서 엄마한테 심한말을 했던 것들이 뇌리를 스쳤다.’
어찌어찌 입관을 잘 마무리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식장으로 가서 하염없이 조문객을 기다리면서 향이 꺼지지 않게 수시로 향불을 지키며, 엄마 영정사진을 바라봤던 것 같다.
오후가 되고 본격적으로 하나 둘씩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하였다. 친척들, 엄마지인, 내 지인 등등 다양하게 왔다. 예상한 것보다 진짜 많은 분들이 조문하러 왔다. 연락을 잘하지도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소식을 듣고 와준 지인들에게 정말 감사함을 이 자리에서 또 표하고 싶다. 아직 제대로 답례인사를 못 드린 분들도 너무 많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제대로 인사 못드린 분들, 챙겨드리지 못한 분들이 계시는데 언젠가 꼭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 속으로 지니고 있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정신이 너무 없었고, 너무 피곤했다. 잠자리가 불편했다기 보다는 그냥 잠이 오지 않아서, 조문객들이 다 가고 장례가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했을 때 잠깐 쪽잠을 잔거 외에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이 밝았고, 발인을 하게 되었고 진짜 이제 엄마를 보내드릴 시간이 되었다. 난 입관 이후로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상주니깐 그냥 진짜 담담하게 있었고, 사실 장례가 다 끝나고 나서도 워낙 엄마가 병원 생활을 오래하였기 때문에 엄마의 부재가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인사 돌리고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엄마의 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다 정리하고, 아빠랑 여동생은 바로 다시 서울로 갔고, 할머니, 할아버지, 나 3명이서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방에서 지인들에게 인사글을 작성하고 있었고, 엄마를 생각하며 이것 저것 쓰다보니 혼자서 최대한 소리 없이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이제 진짜 엄마가 병원에도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실감이 났던 것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인사글을 마무리 짓고 나는 약 3일간 제대로 자지 못해 미뤘던 잠을 청했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쓴 것 같다. 엄마의 죽음 이후로 솔직히 내 생활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친척들이 유독 나를 볼 때 눈치를 많이 살피는 것이었다. 엄마의 부재로 슬퍼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슬프지 않을 수는 없다. 단지 가족들에게 무너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내가 잘지내고 잘버텨야 남아있는 가족들도 그나마 덜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엄마 또한 슬퍼서 내 생활이 무너져버린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그러려니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힘든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그 슬픔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무뎌질것이라고 믿었다. 올해로 엄마가 돌아가신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많이 괜찮아진것 같다. 단지 엄마의 죽음 이후로 알게된 사람들에게는 ‘엄마의 죽음’을 말하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뿐이다. 그래도 한 두번 말하니깐 그나마 괜찮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의 모든 이야기는 2021년 11월 16일까지의 엄마의 이야기에서 멈춰있다.
제일 소중한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서, 죽음 앞에서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언제 올 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생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어차피 죽을 인생 막 살아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난 여기에 대한 답은 없다고 생각하며, 각자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삶이 유한하다는 것과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를 보면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 이후로 더욱 이성적으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슬픔에 대해서 많이 무뎌진것 같다. 체감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닌 타인으로부터의 또는 매체로부터의 슬픔은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슬픔과 관련된 것들을 굳이 찾아서 보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원래 그런 부류들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로 더 심해진 것 같다.
최근에는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었다. 좀 명쾌한 책일줄 알았으나, 나의 정서와는 맞지 않은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무래도 철학적인 내용이라서 그런지 심도있는 이야기를 하면, 고등학교 윤리 수준에서 멈춘 나에게는 지루한 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들이 몇 가지 있어서 오늘 썼던 이야기와 관련해서 나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인용한 글로 하여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러분들도 이번 기회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고, 시간이 많고 철학적인 글을 좋아한다면,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신중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은 아니다. 객관적인 차원에서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목표가 매우 ‘많이’ 있고, 그런 목표들을 달성하는 게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에 비해 우리의 수명이 너무 짧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전해야 할 목표가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이루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하는 식으로 인생을 허비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