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우린 ‘꿈’이라는 단어를 언제 사용할까? 잠을 잘 때 꾸는 꿈, 혹은 우리가 바라는 목표를 말할 때 자주 떠올리는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꿈’을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잠자는 동안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둘째,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셋째,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꿈’은 그 중 두 번째 의미,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여러분은 꿈이 있는가?


나는 꿈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꿈도 많아진 셈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버킷리스트’를 세워놓는 편이며, 이것은 수시로 수정하는 편이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첫 발령을 받은 수학 선생님을 만나면서 교사의 꿈을 꾸게 됐다. 그 선생님과 보낸 시간은 나에게 황홀했다. 얼른 수학교육과에 진학해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었다.


물론, 나의 장래희망은 여러 번 바뀌었다. 요리사, CEO 등도 있었지만, 왜 그 직업을 꿈꿨는지, 또 왜 접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학교에서는 항상 ‘나의 꿈’, ‘장래희망’ 같은 주제를 자주 쓰게 했고, 그때마다 그 순간 끌리는 직업을 적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던 시기에 만난 수학 선생님은 마치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원래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던 편이었지만,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미친 듯이 수학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2학기, 모든 것이 끝나고 타지역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해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공부를 조금 놓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선행학습의 부재로 ‘수학의 벽’을 느꼈다.


결국 나는 전략적으로 ‘좋아하는 과목’보다 ‘잘하는 과목’을 선택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힘겹게 엄마를 설득해 문과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역사교육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였다. 당시에는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 필수화’ 등으로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던 시기였고, 역사교육과는 국어·영어교육과와 입결이 맞먹을 정도로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입시에 실패했고, 교직이수를 고려해 지원했던 사학과마저 교직이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수도 쉽지는 않았다. 수능 영어 듣기 시간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집중하지 못했고, 영어 절대평가가 첫 시행되던 해였던 만큼, 인서울 메이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1등급이 필수였지만 나는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삼수를 원했지만 여동생이 고3이 되는 해였기에 엄마는 일단 입학하고 반수나 편입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영어교육과였다. 편입을 하려면 영어가 필수이고, 나는 멀티가 어려운 편이라 학교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영어교육과를 택했다. 그 이후로는 수학교사, 역사교사가 아닌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달려왔다. 서울로 이사 온 것도, 짧았던 1년간의 교직 경험에서 더욱 간절해진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복합적인 사정으로 교사의 꿈을 잠시 미뤄두고 있지만, 누군가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학교 교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공교육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입시와 관련된 경험은 요약했지만, 글을 쓰다 보니 꽤 장황해졌다. 평소엔 말로만 하던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려니 쉽지 않았다. 초고를 쓰고 나서 퇴고하며 간결하게 만드는 작업이 벌써부터 어렵게 느껴진다.


앞에서 거창하게 말하였지만, 요약하면 나에게 ‘꿈’이란 결국 ‘교사’ 그 자체였다. 그 꿈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주변지인들이나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꿈’ 이야기를 꺼내면, 나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꿈’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로 아이들이 무기력하고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해주면 ‘부럽다’, ‘저는 왜 그런 게 없을까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꿈을 찾았고, 선생님들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적성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교사를 꿈꾸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떻게 그 꿈을 찾아야 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다양한 경험을 해봐.”


그 경험이라는 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경험’에는 다양한 것이 존재하나, 나는 특히 여행을 추천한다. 또한, 해외여행이면 더 좋겠지만, 국내 여행도 충분하다. 정처 없이 번화가를 걷기만 해도 좋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삶을 엿보며 영감을 받을 수도 있고, 특정 직업군이 모여 있는 곳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집돌이, 집순이라면 유튜브로 간접 경험을 해도 괜찮다. 유튜브 만큼 돈 들이지 않고도 꿈을 키워볼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최근, 진로 고민과 관련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다.


“너의 매 순간의 선택이 최종이든 중간이든, 어떠한 목표에 도달해 진짜 이뤄졌을 때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과정이길 바래.”


나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다. 공감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위로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영혼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하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땐 늘 경청하려고 하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친구에게 한 조언 또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어제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원 준비로 인해 책 읽는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자기 전이라도 조금씩 읽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다. 이번에 읽을 책은 김이나 작사가님의 『김이나의 작사법』이었다. 책을 펼친지 얼마되지 않아, 초반부에 나오는 내용 중 공감이 되었던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 음악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불확실한 자신의 재능만 보고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이 간절한가. 아니면 현실을 챙겨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멀리서부터라도 그 일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간절한가? 나는 ‘간절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급하기만 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간절함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언저리 일인들, 음악 관련 일이면 밤샘도 마다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음악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마냥 몽상가처럼 꿈을 쫓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고충이 있고, 그렇기에 현실을 무시한 꿈은 자칫하면 사전에서 말하는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이든 ‘적당히’, 즉 중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무조건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가 혹독한 현실세계에서 ‘꿈’이라는 어찌보면 막연한 생각에 대해서 오래 버티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건강’이나 ‘운동’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면, 나의 ‘중용’에 대한 생각 더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며 도전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김이나 작사가님의 책에 있던 내용 하나를 더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한쪽 눈을 뜨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도, 잡는 것도 평소의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그리고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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