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트, 나의 독서 전환점
여러분들은 소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나는 그냥 ‘novel’과 ‘fiction’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허구적인 글’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뜬금없긴 하지만, ‘novel’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TMI로, 수능 영어 빈칸추론에서 저 단어가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로 나왔는데, 많은 학생들이 ‘소설’이라는 뜻으로만 생각해서 소거하였지만 정답이었던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책을 애초에 많이 읽지도 않았고, 최근 들어서야 열심히 책을 찾아보고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설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읽지 않았었다. 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이성적이라 그냥 읽지 않았던 것인지 소설에 대한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소설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은 한 권 있다. 그것은 바로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생활기록부에 독서 항목을 채우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왜 그 책을 골랐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엄마가 추천해준 책이 었던 것 같다(엄마는 ‘문자중독’일 정도로 책을 많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셨고, 공부는 안해도 뭐라고 하시지는 않았지만 책을 안읽으면 엄청 혼내셨다. 아마 이런 어릴적부터 ‘독서’에 대한 엄마의 강요(?)로 인한 반감으로 책을 더 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가 두꺼워 보여 겁을 먹었고, 거의 ‘도장깨기’하듯이 읽자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처음에 책을 접할 때는 겁부터 먹고 약간 도장깨기 하듯이 읽자는 목표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 같았다.
당시 고등학교 국어선생님께서는 책을 읽을 때 메모지에 메모하면서 읽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A4지 한 장을 준비해 기록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하나로 지칭되는 것이 아닌, ‘~부인’, ‘~공작’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서 메모하면서 읽는게 정말 효과적이었다. 더군다나 쉬는 시간 틈틈히 읽다보니 읽고 제쳐두면 이전에 읽었던 글의 내용을 잊어 버리기 쉽지만, 메모 덕분에 흐름이 거의 끊기지 않았다. 또한 메모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을 한번 더 정리할 수 있어서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10년도 더 지나서 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19세기에 쓰여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성 간의 관계를 놀랍도록 세련되게 다룬 책이었다는 점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 경험을 통해 메모의 중요성을 몸소 체득했고, 지금도 어떤 글을 읽고 집중을 해야 할 때는 메모장 또는 아이패드 메모장을 켜놓고 읽으면서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심지어 대화를 할 때도 메모하며 필기하는 습관으로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지인의 추천으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라는 소설을 읽었다. 책, 특히 소설은 장르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이 더욱 높았고, 내가 흥미를 느낄 책을 찾지 못해 소설 읽기를 멀리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지인 또한 소설 추천을 잘 하지는 않는데, 이 책은 호불호 없이 누구든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며 본인도 여러 번 읽었던 책이라고 하여 고민 없이 책을 샀다.
이전에 읽던 책을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샀던터라, 그 책은 바로 읽지는 않았다. 이전 책을 마저 다읽은 뒤에 며칠의 기간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그날은 야식을 먹은 후 일찍 잠들었는데, 잠이 깨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새로 산 그 책을 조금 읽고 자기로 했다. 책의 두께가 상당해서 솔직히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였고, 1시간 정도만 읽고 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캐릭터에 대한 소개가 나오면서 난 역시 메모장을 옆에다 두고 메모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1시간 정도만 읽고 자려고 했는데, 읽다가 너무 몰입을 해버려서 3-4시간 정도 읽었다. 솔직히 더 읽고 싶었으나, 수면 패턴이 깨질 것 같아 겨우 참고 멈추고 잠을 잤다. 책의 문장들이 너무나 깔끔하고 좋아서 인상 깊은 문장들을 발췌하며 읽었다.
내용이 다소 어두운 감이 있었지만, 읽기 어렵지 않았고 내가 원했던 소설의 부류였다. 쉽게 읽히는 문체와 논리적인 내용,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의 깔끔한 상황 설정으로 몰입감이 엄청나서 마치 시간이 순삭되는 듯했고,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책 중 최고로 뽑을 수 있을 만큼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나처럼 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은 사람이라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라는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학창시절 나에게 소설이란,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한, 수능 국어 만점을 위한 수단적 목적이었다면, 지금 내게 소설은 내 내면의 창을 넓히고,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하게 해주는 놀라운 여정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지, 어떤 캐릭터의 삶에 공감하게 될지 기대된다. 이제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와 삶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마법 같은 창구다. 나는 이제 그 마법에 빠져들고 있다.
소설에 대해 저와 비슷한 경험이나 고민을 하신 분들께서는, 이 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