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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ung KIM Apr 11. 2018

연애와 사랑의 중간쯤을 헤매고 다니는 당신에게

-그와 하게 될 사소한 일들이 궁금해지는 순간에 대하여


“우리에게 좋은 것들이 대부분 그렇듯, 사랑도 후천적인 취향이다.” _도널드 밀러, <연애 망치는 남자>

 대학 때 같은 하숙집에 살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추억에 잠겼다.
 “욕실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던 거 기억나? 실연당하고 나서.”
 우리는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정말 다정했던 사람을 겨우 만났는데 그에게 애인이 있었지.”
 “우스운 건 그때 이후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야.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가장 잘 넘어지는 분야 1위를 꼽으라면 연애다. 도무지 레벨업이 안 되어 멍하니 여러 인연을 놓치고 만다. 그러면서 연애상담은 자주 한다는 게 아이러니이지만.(그렇다고 서점에 오셔서 무작정 실연상담 하시면 안 됩니다. 절친 한정이에요^^)

 “연애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지난겨울, 친구가 데려간 바 옆자리 여자 손님이 우리를 향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무 답답해서 내가 찾아봤어요. 두산백과사전에 보면요, 연애란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자연스런 애정’이라고 나와 있어요. 내가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니야, 연애 좀 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 정신적인 것까지 바라지도 않는다고!”
 김승옥의 소설 속 겨울밤 선술집에서 만난 이들처럼, 우리는 연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중에 온 옆자리의 외국인 손님까지 합세해서. 두산백과사전을 줄줄이 읽던 그 손님에게 취한 거 아니냐며 놀리긴 했지만 사실 그녀는 취하지 않았을 거다. 나는 김승옥의 소설 속 인물처럼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김형, 나도 동의해요.”라고.
 
 내가 언급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던 그 사람, 북페스티벌 부스에서 책을 팔고 있던 나를 보러 반차를 내고 와서 책을 사주던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더 좋아지지가 않았다.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의 일상이 궁금하지가 않았다. 그와 함께할 미래가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너무 잘 그려졌던 걸지도 모른다.
 반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밤을 새우던 그 사람은 달랐다. 결국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를 비난하며 거절했다. 지금처럼 소시오패스라는 단어가 정의되기도 전의 일이라 펀치를 맞은 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도, 몇 년 후 우연히 같은 공간에서 멀찍이서 뒷모습만 보고도 그인 걸 알아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있어 나의 충격은 두 배였다고만 밝히겠다.    
 나는 지금 사랑이 아닌 연애를 말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우리는 연애와 사랑의 중간 어디쯤을 헤매고 있다.  

 도널드 밀러의 <연애 망치는 남자>는 주인공 돈이 벳시를 만나며 사랑을 배워가는 여정을 그린다. 늘 여자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인정욕구를 채우고, 관계가 시작되면 자신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역할로 여자친구를 밀어놓았던 그는 벳시를 만나며 조금씩 달라진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한 운명을 따라가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평범한 이야기를 닮아 있다.
 
 나는 정말 어이없는 일로 벳시와 다투기도 했다. 벳시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고마워”나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하지 않고 나를 비하하는 농담을 했다. 벳시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었다. 나는 벳시가 웃지 않자 오기가 생겨서 같은 농담을 반복했다. 벳시는 마음이 상했다.
  “재미없어.” 벳시가 말했다.
  “재밌잖아.” 내가 응수했다.
  “아니야, 돈.” 벳시는 에돌지 않았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자기는 내 말을 믿지 않잖아. 그건 멍청한 짓이야. 자기가 하는 말은 내가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는 거잖아. 자기는 스스로 비하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자기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거잖아. 그런 말을 듣기 싫어.”_도널드 밀러, <연애 망치는 남자>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누구보다 더 모험가가 되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더 겁쟁이가 되는 걸까? 지난 글에서 “항상 도망 다니던 삶을 그만 두었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했건만 사실 그 문장 앞에는 괄호 치고 ‘사랑은 제외하고’라는 말을 넣어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마음은 있다. 이 사람과 시작한 관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마음을 보호하기를 그만두고 용기를 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직도 연애 상담은 하되, 내 문제는 해결 못하는 나에게 책 속의 벳시가 이런 멋진 말을 들려주었다.
 “가끔씩은 아무것도 아닌 대화 속에서 진짜 우정이 싹트는 거야.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같이 있고 싶다는 뜻이야. 멋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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