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마주하는 연습
지난 주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 앞 카페에서 빵을 먹었다. 아이들은 뺑오쇼콜라 등 평소 안 먹어본 빵들이 나오자 신이 났다. 맛있는 떡볶이와 중간고사, 친구들과 놀러간 이야기를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싱그러웠다.
“얘들아, 김하온과 이병재의 ‘바코드’ 들어봤어? 선생님은 그 공연 보고 너무 감동받았는데!”
“선생님, 저 랩 안 좋아해요...”
“그럼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
“옥주현요.”(이 친구는 뮤지컬배우가 꿈이다. 핑클은 우리 세대 가수인데 열다섯 살이 좋아한다 해서 참 신기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빵을 베어 먹으며 화제를 돌렸다.
사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꺼낸 화제가 아니라 고등학생 둘의 공연 영상을 보고 나는 말 그대로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 이병재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2평짜리 지하방에서 랩을 쓰며 지낸다. 서울대생 누나와 늘 비교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지 못한 이 소년은 정신과약을 먹어야 했고 극단적인 생각들에 시달렸던 자기의 현재를 그대로 쏟아낸다. 그의 랩은 독보적이다. 어린왕자 캐릭터가 떠오르는 김하온은 반대로 어린 나이에 명상을 통해 멘탈을 다스린다. 욕설을 늘어놓는 랩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온한 상태에 대해 철학서에서 나올 법한 가사를 자유자재로 노래한다. 서로 다른 성향의 둘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김하온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병재는 가사에서 자기의 치부나 약점을 드러내는 거에 두려움을 못 느껴요.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함을 필터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데 모순적으로 아름다운 거죠. 멋있어요.”
나는 이 우울한 소년이 자기 약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랩을 할 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무한한 위로와 용기를 얻으리라고 확신한다.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꽁꽁 싸매고 있을 때 우리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뿐더러 신기하게도 타인과 거리가 좁혀지는 일이 일어난다.
항상 도망 다니는 삶은 피곤하다. 실패할까 봐 막상 기회가 주어지면 변명을 하며 뒤로 물러난다. 이런 사람은 사랑을 할 때도 수동적으로 선택되는 쪽을 택한다.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니까. 진로나 일을 선택할 때도 기회를 여러 차례 흘려보내게 된다. 그 일을 해서 자신이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느니, 그 기회를 떠나보내고 아쉬워하는 걸 택한다. 우리 안에 뿌리 내린 두려움이 실은 우리 인생을 조종하는 것이다.
최근 나는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했다. 3년 전 작은 소설교실에서 단편 두 편을 쓰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서울로 이사 오며 그만두었다. 그러다 어느새 밥벌이에 매몰되어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보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등록했다. 수강생들이 모여 합평 순서를 정하다가 어쩌다 보니 내가 1번이 되었다. 1번이 되거나 다음 학기에 합평을 받거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사실 나는 써놓은 글이 하나도 없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일에 뛰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덥석 하겠다고 했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매달린 지난 일주일간 다른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어쨌든 짧은 시간 내에 완성했다는 성취감도 있어서 꽤나 으쓱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수업 당일, 합평 시간에 그야말로 무진장 깨졌다. 장점 한두 가지를 언급한 후 수강생들은 무척이나 다양한 혹평들을 내놓았다. 첫 두 작품을 칭찬하셨던 선생님도 “미정 씨가 시간이 너무 없었구먼” 하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런데 놀란 건 그다음이다. 어? 혹평을 들은 내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척 자존심 상했을 평가들인데,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쓴 설익은 소설을 꼼꼼하게 읽고 합평을 해준 문우들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자신이 새삼 놀라웠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구나 싶었다. 일단 짧은 시간에 소설을 완성한 내가,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긴 내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1번을 자청한 것도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여유 있는 타이밍을 기다리며 기회를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기회는 그때밖에 오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가 제안한 생전처음 해보는 일,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일까지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때 받아들이고 부딪치고 깨지고 경험해볼 수밖에 없다. 일도 사랑도 충분히 무르익은 때란 오지 않는다.
자기 약점을 노출하며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병재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선의를 가진 이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넘어지고 깨지고 욕먹는 경험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믿는다. 가장 위험한 것은 욕먹지 않는 삶, 깨지지 않는 삶이 아닐까. 항상 도망 다니던 삶을 그만둔 이래로 나는 예전보다 덜 피곤하고 더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