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D

4. 불편한 기억

by 아보카도나무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Locum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레지던시를 마친 도시를 떠나고자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곳에 남게 되었다. 불확실한 시기 속에서, 익숙함이 모든 것을 앞섰다.

어차피 집(비행기로 4시간 떨어진 다른 주의 도시)에 돌아가면 이미 면역력이 약한 엄마에게 병을 옮길 확률이 높아서, 그냥 일단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시에서 일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팬데믹 동안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집에 있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병원은 중증환자들로 바빴지만, 그 외의 동네 의원이나 수술실, 응급실은 조용해졌다.

Locum 중 응급실조차 이렇게 조용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응급실 문이 굳게 닫히고, 사람들은 일일이 스크리닝을 당하고, 대기실 의자/ 자리에 많은 엑스가 쳐져 있었다. 우리만, 의사와 간호사만, 있던 그 기이한 형상. 마치 세상이 끝난 듯한 이질적인 고요함이 근무시간에 감돌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레지던시를 마친 동네 의원에서 환자들을 받기 시작했다. 친분이 있는 의사 선생님이 주인인 클리닉에서 일하게 된 것인데, 솔직히 나는 원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누군가의 이름에 붙어있는 게 (담당의로서) 그 당시에는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그런데 마침, 팬데믹에 맞춰서 그곳에서 일하던 세 명의 의사 선생님이 일을 그만두셨다. 팬데믹이 오면서 많은 의사들이 은퇴를 앞당기거나, 보수 정권의 영향으로 다른 주로 떠나버렸다. 그때 당시, 보수 정권은 팬데믹 중에도 의사협회와의 협상을 뒤엎고 의사들을 악마화하기 바빴다. 많은 의사들이 회의감을 느끼고 떠난 시기였다.


환자들을 받을 때마다, 나는 안내문을 하나하나 읽어주거나, 종이를 나눠주었다. 왜냐하면 난 북쪽의 외진 지역, North West Territory에서도 일했기 때문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런 생각에, 하지만 사실 내가 도움이 되었는지 확신은 들지 않았다. 새내기 의사로서 오히려 불편함만 끼친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경험이 부족하면 거칠고 서툴러서, 생각해보면 모든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가고, 나는 거기에 큰 미안함과 자괴감을 느꼈다. 어쩌면 이건 Imposter Syndrome의 연장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에는 너무나 뛰어난 선배 의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미숙함이 더 부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내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적어두었다. 학생 (의대생/수련생)들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의료 열악한 지역에서 일할 때 클리닉을 비울 수도 있다는 그런 말을. 그럼에도 괜찮다면, 내가 담당의가 되어주겠다고.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처음 받은 환자 중 한 명이 식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환자는 나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했고, 사실 그 환자는 원래 다른 의사 선생님의 환자였는데, 그 의사선생님이 떠나면서 내가 얼떨결에 그 환자분도 받게 되었다. 차트에는 이미 리퍼러가 보내졌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안내했다. 내가 짧게 얘기하며 “다음에 더 자세히 얘기하자”라고 말했을 때, 아마 나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짜증이 묻어났을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가정의 환자를 그렇게 썩 좋아하지도 않은 도시에서 살면서 받고 있었고, 이게 잘하는 일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환자의 초기 증상은 역류성 식도염과 같았다. 얼마 후, 소화기내과에서 전임이 보냄 리퍼러를 보고, 그 환자를 보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고 (대신 이 웹사이트에 나와있는데로 하세요 - 예: 생활 습관, 예: 약물치료), 그 환자는 결국 다른 주에 있는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식도암을 진단 받았다.

그때, 나는 이 사건을 의료인으로서 나의 큰 ‘흑역사’로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리퍼러를 다시 한 번 살폈다면, 어쩌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환자에게 짧게 증상에 대해 여쭤보았을때, 딱히 레드플래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불편함과 따가움을 느낀다. 그때의 핸들링은 정말 미숙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잘할 자신이 없다. 요령이 없었고, 단지, 조금만 더 환자에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 후, 그 환자는 간호사인 형제와 함께 다시 클리닉으로 내원하였다. BC에서 받은 소견서와 여러 리포트를 가지고. 이미 검사를 다 받았지만, 내가 소화기내과 전문의한테 여쭤보니, 혹시 모르니 내시경과 조직검사를 다시 진행하자고 했고, 이는 환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화가 나 있던 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소중히 보내기로 했다. 그는 몇 번 클리닉 그룹 멘탈 헬스 치료에도 왔지만, 곧 그곳에서 다른 환자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달라서 발길을 끊었다.


그 후, 그는 MAiD(의사 조력 자살)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MAiD와 정식으로 연결되었고, 이 환자와의 만남이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환자와의 강렬한 기억은, 나에게 MAiD와의 첫 대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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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9- Red Rock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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