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도문
"부디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을 참을 인내심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지혜를 주소서."
이 기도문은 내가 참여했던 그룹 테라피에서 자주 나왔던 구절이다. 당시에는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그리고 삶의 여러 도전들에 맞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 되뇌곤 했다. 그러나 이 기도를 안락사(MAiD)에 관해 생각하며 접했을 때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안락사를 고민하는 환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기도문의 의미가 너무도 명료해진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다. 삶이 주는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를 깊이 고민하고, 그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선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볼 때면 인간이란 존재의 강인함과 나약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환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풀어낸다. 힘든 몸을 이끌고, 때로는 가족들과 함께 오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의 고통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으로서, 안락사를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그들이 품었던 궁금증을 풀어주고, 이 선택이 고통의 해방이라는 점을 함께 탐구한다.
그럼에도 가장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은, 정작 환자 본인은 담담히 자신의 선택을 이야기하는데, 그 옆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눈물을 삼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다. 환자의 평온한 태도와 주변인의 감정적 격랑 사이의 간극은 늘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언어로 위로를 전하려 하지만, 부족한 표현력 때문에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
안락사 상담은 단순히 죽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둘러싼 모든 관계와 감정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나는 환자들이 기도문 속 메시지를 스스로 체화한 듯한 태도를 발견한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며, 그 현실 안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고통 속에서도 가능한 최선의 평화를 찾도록 돕는 것이다.
2023 12 - King Creek Ri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