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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Nov 05. 2024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더니

사람을 호구로 본다.

나랑 일하는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 처음에 그 선생님은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계속 텃세를 부렸다. 문을 닫고 다니라는 둥, 물건을 놓지 말라는 둥 말이다. 그러는 본인은 문도 열어놓고 자기가 열어놓은 줄도 모르고 나한테 열어놨냐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 내가 처음 맡는 업무도 있었고, 내가 하면 되지란 생각에 지적받으면 내가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처음이니 잘 모르는 게 당연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잘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하라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도 그냥 참고 일했다. 심지어 외모나 성격으로 인신공격을 교묘하게 해도 꼭 집어 말할 수 없으니 넘어갔다. 그게 문제였을까.


도를 넘어 하대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이들 있는 앞에서.

처음에 선을 넘었을 때 당당히 말했어야 하고, 따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한심해 보였다.


처음 학교에서 일했을 때도 그런 부장교사가 있었다. 유아들은 이미 교사들의 상하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걸 눈앞에서 보면 유아들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특히 그 부장교사가 맡은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부장교사의 말만 듣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생활지도나 안전지도를 해도 듣질 않는다. 유아들은 자신이 부장교사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유아의 잘못이 아니라 유아기 발달 상 그럴 수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선생님도 가끔 그렇게 선을 넘을 때가 있다. 화장을 하라는 둥, 옷을 어떻게 입으라는 둥, 심지어 수업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얘기한다. 물론 수업에 대해 서로 토론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수업에 대한 품평회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수업자료도 열심히 만들어 놓으면 서슴없이 달라고 할 때도 있다.


백 번 양보해 그렇게 해 준다고 하자. 얘기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응했더니,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덤터기 씌운다. 아예 내가 했다고 전제해 놓고 따지듯이 추궁한다.


여기에서 나는 손절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학교 밖에 나가면 뭣도 아니면서 사람을 무시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서 완곡하게 대해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더 이상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웃긴 것은 외부 사람이나 상급자에게는 세상 친절하다. 그래서 내가 불편한 걸 말하면 나는 고자질쟁이가 되고 그런 것도 못 참는 분노조절장애인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절하기로 했다. 내가 일했던 방식이 원래 혼자 일했던 식이라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정말 편했다. 그전에는 내가 열심히 하고, 도와주면 적어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관계적 공격성을 이용해 나를 꺾으려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하러 온 것이지, 친구를 사귀러 온 것이 아니기에 내 할 일만 묵묵히 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것저것 내 일도 아닌 데 가서 도와줘야 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관계가 좋지 않아서 외롭고 힘들었을까. 다행히 나는 일터에서는 목표지향적이라 멘털을 관리할 수 있다. 유치원 특성상 조직문화가 관계주의 성향이 짙다. 서로 관계가 좋아야 부담 없이 협조하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과 일했었어서 내가 동료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편하게 얘기했던 것 같은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또 어떤 선생님과 일하게 될지 모르겠다.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지만, 처음 사람을 대할 때가 가장 긴장된다. 어떤 사람일까.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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