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상담력이 있어야 경쟁력 있는 이유
예전에 다니던 치과로 다시 갔다.
의사 하면 우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떠올린다. 숭고하고 근엄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연상한다.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하는 의사지만,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지는 않아도 생명에 관련된 치아를 치료하고 진료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치과의사들이다.
나는 최근 두세 군데의 치과를 가게 되었다.
검진하러, 진료받으러, 치료하러.
검진했던 치과는 그냥 의례적으로 진료를 해 주었다. 치과에 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 나의 상태가 조금 심각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불편한 곳을 말했고, 의사는 그 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다른 치과를 연계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른 부분은 별 이상 없다고 진단을 받았다.
진료를 받으러 간 치과에서는 나의 잇몸뼈는 세균에 의해 거의 녹아내렸고, 치아는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냥 스케일링을 받으라고 해 줄 줄 알았는데, 녹아내린다느니, 염증이 심각해서 임플란트는 불가능할 거라느니 이런 말을 듣자, 너무 겁이 났다.(사실 그렇게 겁날 일은 아닌데)
그래서 덜컥 발치와 임플란트를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사실 많이 앓아 오던 치아여서 언제 빼도 이상하지 않은 치아였다. 이전 병원에서도 발치를 권유했었어서 사실 시기가 많이 늦었긴 했었다.
그런데, 발치를 하면 그 맞부딪치는 치아는 점차 내려온다. 부딪히는 짝꿍 치아가 없으면 얘가 그냥 점점 힘을 잃고 내려온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빨리 이를 넣어 주었으면 했다.(사실 임플란트가 처음은 아니기에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이전 병원에서는 이 점을 우려해 임시 치아를 넣어 주었다. 그래서 짝꿍 치아가 내려오지 않도록 말이다.
의사는 문제의 치아와 윗 쪽치아를 함께 발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을 뜰 때 같이 뜬다고.
아,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위아래 이를 함께 뺀다고 할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 얘기를, 내 치아의 불편함과 내가 어떻게 관리했는지, 관리해야 하는지 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바로 생각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있는 치아를 최대한 가지고 있고 싶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옛말을 숭배하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나는 뭔가 인공적인 것이 불편하다. 그래서 조금은 기능이 다했지만, 계속 고쳐서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의사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치아의 최상의 기능과 다른 질환 예방을 위한 진단을 하는 것 같았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나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치료를 권하는데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함께 나아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의사는 계속 나를 설득했고, 나는 예약을 잡았다가 취소했다를 번복했다. 엑스레이상에 멀쩡히 내 잇몸에 박혀 있는 저 뿌리가 보이는데, 어떻게 뽑으라는 거지. 내 치아 엑스레이는 이미 보철물로 덕지덕지 붙여진 게 정말 보기 싫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여기저기 박힌 나사못이 내 치아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나는 나무토막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경치료 한 자국, 치아 표면을 땜질한 자국이 즐비한 엑스레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열심히 의사가 나의 치아를 처치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씹지도 못하는 힘든 생활을 벗어나게 해 주었으니 나에게 새로 들어온 임플란트 치아도 받아들여야겠지.
결국 나는 원래 다니던 치과로 다시 가기로 했다. 나의 약한 잇몸과 나의 본래 치아를 좀 더 지켜주는 것을 지지해 주는 치과였다. 하지만, 그 치과도 임플란트를 권했었던 치과였다. 다른 점은 충분하고 친절하지만 나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내 입장을 고수했을 시 어떻게 될 것인지 차분히 설명해 주었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의사의 설명을 환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사실 그곳은 집과 가깝지만, 다소 진료시간 오픈이 늦고 예약 잡기도 어려운 곳이다.(그만큼 인기가 많은 건가.) 주변 치과도 많은데 그 치과만 유독 그런 것 같다. 아마 잘생기시고,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다른 치과에서 진료받고 임플란트 한 것이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치료를 믿지 못하는 의료쇼핑러로 보일까 봐 구구절절 설명했다. 하지만, 젠틀하게 그건 괜찮다고(어차피 다른 치과에서 임플란트 받았으면 그 치아 진료는 그 치과에서 진료받는 것이라서) 하면서 나의 치아와 잇몸에 대해 치료계획을 얘기해 주었다.
나의 불안과 죄책감(?)을 덜어주는 상담이었다. 물론 이전 의사 분들도 잘해주셨지만, 나의 치과 방문 목표에 합당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병원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에게는 이런 의사가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나이 들 수록 더 많이 가게 되는 치과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