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서 특별해.

한국에서 살기 더 힘들지도.

by 배써니

요즘은 하도 개인주의다 뭐다 해서 혼자 무엇을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아이를 한 명밖에 낳지 않아서 그런지,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나 싶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느끼는 것은

딱 한 가지다.


혼자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

외동이라도,

형제자매가 많더라도

이건 꼭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외동아이.png

혼자 크는 아이들일수록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연령대 나이 아이들과 교류가 많아야 한다.


보통 외동아이들은 친구와 같이 장난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조절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같은 연령이라도 체급이 다른 친구들과의 승부는 일방적이기 마련이다. 힘이 센 아이는 아이대로 억울하다. 나는 살짝 친 것일 뿐인데, 왜 저 친구는 나가떨어지나.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이기려는 욕심에 체급이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가 악을 쓰고 달려든다. 그럼 상대 아이는 장난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체급대로 힘껏 밀친다. 결말은 어떠한가. 당연히 한 아이는 울면서 달려오고, 다른 아이는 내 눈치를 힐끔 본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놀아!'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둘을 부른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서로의 약속을 말하게 하고 다시 놀라고 해 준다.


매년 이런 상황을 학기 초마다 겪는다.


체급이 큰 아이가 외동인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그냥 그 상황을 겪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겪었어야 할 일을 유치원에서 처음 겪으면 더욱더 신경 쓰인다. 그걸로 부모가 민원이라도 걸면 난감하니까 항상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물론 어려서 어린이집에서 겪고 유치원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또래연령 없이 보호자에게 과잉보호(?)를 받고 유치원에 오는 경우는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친구들은 외부에서 보기에 약간 줏대(?)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고지식해 보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말한 규칙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요구와 욕구는 꼭 충족되어야 한다. 충족되지 못하면 금방 울음을 터뜨리거나 어른에게 꼭 얘기해서 어른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니, 친구들이 좋아할 리 만무다. 자기네끼리 속닥거리면서 비밀이 생길 의리(?) 있는 것도 우정의 조건에 해당되는데, 그걸 자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선생님에게 쪼르륵 가서 얘기해 버리니, 배제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친구의 말을 무조건 따라본다. 자신이 약간 부당하는 것 같이 느껴도 조금은 참아본다. 그러면 상대 아이가 그걸 이용(?)해서 마음대로 쥐락펴락한다.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할 걸 아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부탁을 한다. 어느 정도는 참아보지만, 결국엔 참지 못하고 다시 갈등이 일어난다.(외형은 학교폭력 같다.)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서로 선도 넘어보고, 같은 의견을 갖기도 하면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알아간다. 자연스럽게 감정의 기준이 생긴다. 그러면서 친구가 된다.


그런데, 참, 이게 신기하다.

이미 7살이면, 빠르면 6살 2학기 때쯤이면 이런 기류가 희끄무레하게 형성된다. 이미 우리의 놀이규칙과 서로의 기준선이 형성되어 있는데, 새로 온 급우들이 이걸 망치려 하면 기존 재원생들이 가만히 안 두는 것이다. 게다가 외동아이가 새로 전입 오게 되면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유치원생들은 편견이 없어서 선생님이 친구랑 함께 놀아야 즐겁다고 말하는 것을 잘 들어준다.


외동아이가 형제자매 없는 삶이 행복함을 느낀다면 더불어 사는 삶도 꼭 가르쳐야 한다. 해가 가면 갈수록 더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외동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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