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선생님이 15 더하기 8은 얼마인지 묻는다. 얼굴은 긴장되고, 눈은 책상아래로 늘어뜨린다. 두 손은 책상 밑 아래에 있다.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답을 말한다. 샘이는 아이들이 답을 말한 순간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이 손을 축 늘어뜨리고 얼굴이 편안해졌다.
나는 다가가서 귓속말로 말해줬다.
손가락이 모자르면 발가락으로 세어봐
샘이는 그 말을 듣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갔다. 담임선생님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지만, 샘이는 책상 너머 자신을 발과 손을 연신 보면서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열개의 손가락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도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학생들이 있다. 그것을 고쳐주려고 교사나 부모는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계산하라 한다. 암산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수학이라는 것은 참 아주 정직한 놈이라서 원래 알아야 할 것, 체득된 지식이 아니면 다음 진도로 나갈 수 없다. 이해와 암기가 동시에 충족되지 않으면(물론 다른 과목도 그러하긴 하지만, 특히 수학은) 절대로 다음 단계를 올라설 수 없다.
아이들의 인지적 단계는 서서히 발달된다. 그리고 구체적인 경험과 자신에게 쓸모있는 도구로써 기능해야 비로소 그 상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수를 이루는 각기 요소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수를 가지고 연산이란 걸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1은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같은 순서를 나타내기도 하고, 사과 한 개를 나타내는 것처럼 수량을 나타낼 수도 있다. 또 버스번호나 출석번호 같은 대표하는 상징일 수도 있다.
수는 수단어를 지칭하는 의미와 맥락도 알고 있어야 한다.
숫자를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의외로 초등학생들이 숫자를 정확하게 쓰지 않아 계산실수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수는 쓰기, 수의 의미, 수량을 많은 수학적인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라야 비로소 크고 작은 대소관계를 아는 경험을 한다. 9보다 1큰수는 10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야 그 다음에 비로소 9 더하기 1은 10이라는 것을 수식으로 썼을 때 이해하게 된다. 이 단계 이후 덧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10진법을 익히게 된다.
대소관계에서 수량의 크기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어떤 기준에 묶어서 단위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십진법을 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 손가락이 열 개이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더하기 빼기를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더해서 10 이하인 수들도 손가락이 필요하다면 꼭 손가락을 쓰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머릿속으로 암산하라고 강압을 넣으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다 외어야 한다.
물론 나중에는 굳이 계산하려 하지 않아도 외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인들은 자신들이 10이 되는 수들의 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고, 이해조차도 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더해서 5이하의 수들은 보자마자 알아챈다. 수량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면 '즉지'라는 현상으로 인해 공기돌 5개를 가지고 덧셈과 뺄셈 놀이를 할 수 있다.
공기돌 2개를 던지고 나서 3개를 던지면 바로 '5개'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런 놀이가 가능하지 않다면 손가락세기는 필요한 단계이다. 그게 초등1학년이든 2학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개개인의 능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인지능력도 각각 분야가 달라서 글자와 숫자를 안다고 해서 모든 학습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저학년들은 학생들의 학습태도와 성취도가 많은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른 평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초등수학에서는 음의 정수를 다루지 않는다. 분수도 양의 유리수만 다룬다. 중학교에 가서야 음의정수, 음의 유리수가 소개되는데, 과도한 선행으로 아이들이 음수까지 습득하고 있으면 초등학교 단원평가같은 성취도 평가에서 학습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학생들의 정확한 평가가 힘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지식을 적절하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행을 해서 알더라고 선행한 지식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갖춘다면 선행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손가락세기가 필요한 학생들은 학년에 상관없이 쓰도록 허용해 주어야 하며, 얼른 그 단계를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단계를 벗어나는 방법은 열 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학생 당사자가 손가락세기가 더 이상 필요없을 때까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암산이 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저학년 학생은 손가락세기를 하고 있는 본인도 매우 부끄러워 할 것이기에 굳이 머릿속으로 계산하라고 독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손가락세기가 귀찮아질때가 분명히 오기 때문이다.
손가락세기를 하는 학생에게 머릿속으로 계산하라는 것은 명백히 '무리한 조기 선행학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