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써니 Jul 27. 2023

선생님,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나도 어려웠단다.

초등학교 4학년, 처음 맡은 특이한 여자아이였다. 학교에서 수학시간에는 거의 엎드려 잠만 잔다는 그 친구는 오후가 되자, 더 힘들어 보였다. 


교실도 없어서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행정업무를 보시는 그 속에서 그 아이랑 같이 나란히 앉았다. 그 아이는 그냥 엎어져 나를 비스듬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비스듬히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넌 이름이 뭐니?" 

나는 당연히 그 애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맡을 아이 이름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이선희요."

"그래? 이름 참 이쁘다. 

그 이름으로 가수도 있고 작가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이미 다 커버리고, 직업이 있어서 뭐가 될지 궁금하지 않다. 

그치? 우리 선희는 좋아하는 게 뭐려나?"


나는 지나가듯이 물었다. 다행히 천진난만한 이 친구는 지정된 시간이 수학시간이니, 수학에 관련된 것을 할 것임을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으니, 책상에 붙은 자신의 머리가 점점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귀울였다. 


이 친구가 좋아하는 건 노래와 춤이고, 이런 것은 '수학'과는 거리가 머니, 자신은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였다. 


"오, 그래? 그런데, 수학은 더하기 빼기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수학은 고리타분한 계산만 하고 숫자에 걸신이 들려 의미도 없는 수의 나열에 정신을 쏟아야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놈의 수학교과서와 익힘책, 수학교육과정은 너무나 고리타분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 참 힘드시겠다 생각이 들었다. 수학말고도 여러 가지 과목을 가르쳐야 하고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런 학습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찬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한숨이 나오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있는게 아닌가!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선희에게 들이댔다. 


"수학이 왜 어려워?"

"계산하는 게 너무 복잡해요."

"나도 수학이 싫었어."

그러자 눈을 크게 뜬다. 


"에이 거짓말!"

"아냐! 선생님도 초등학교 때까지 수학을 너무나 싫어했는걸?"

"그런데, 어떻게 수학을 가르쳐요? 수학 싫어한다면서요?"

"수학을 못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아니까, 수학 몇 번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언제 그렇게 되었어요?"

"중학교 때 였는데, 나도 수학을 못했어. 그런데 내 짝은 나보다 더 못하는 거야. 그런데 자꾸 나에게 알려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공부해서 알려주게 되었어. 그러다가 나중에 같이 수학을 공부하게 되었어."


선희는 나에게 다가앉으며 눈을 빛냈다.

"선생님, 저도 그럼 그 친구예요?"

"그럼! 선생님은 단지 너보다 먼저 수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자꾸 틀리는 걸 너보다 좀 많이 경험한 사람이야. 그러니, 선생님하고 한 번 해보면 수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걸?"


선희는 미심쩍어했지만, 새로운 사람을 본다는 것에 기쁜지, 즐거운 것인지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에게는 아마 많은 선생님이 스쳐갔을 것이다. 기한이 있는 만남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제한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그래도 처음 대면에서 최대한 응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 기특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곱셈구구도 헷갈려하고, 세 자리수와 두 자리 수 곱셈을 헷갈려하고 있었다. 간단한 문장으로 된 수학문제를 읽고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단 곱셈구구를 깨우치도록 하는데 주력을 다해야겠다 생각했다. 


초등수학은 다행인 것이 주변의 일상생활에 관련된 문제가 많기에 중학교 수학 가르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했다.  


첫 대면에서 선희와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천천히 다가가도록, 중간에 도망치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담임선생님이 같은 교실에 있기에 각각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도 충분히 이해해주시고 배려해주셨다. 


주 2회 4차시로 짧게 만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대면에서 선희는 나에게 호기심과 호의를 가졌다는 것을 느꼈다. 한 달은 밀당을 계속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다음시간에는 간단한 기억력 테스트 게임을 가지고 와야겠다. 




수학이 어렵다는 생각을 없애는 것이 가장 힘들다. 뭔 놈의 계산만 그리 주구장창 해대는지 모르겠다. 초등 6년동안 그렇게 계산만 해대서 중학교 들어가면 수학이 극적으로 달라진다. 초등학교에서 숫자는 '수'가 아니라 그냥 놀잇감 중 하나로 인식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선희와 5월 말쯤에 만나 11월까지 매주 만났다. 선희는 따로 학습부진아 상담까지 받고 있었다. 수학결손이 3년 정도 축척된 상태로 나에게 왔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수학을 어려워하기만 했지,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까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앞으로 이 아이는 수학을 잠깐 알려준 나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 학생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문제의 소지가 있을 시 삭제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도 손가락으로 물건을 세니?(초등저학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