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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Jul 30. 2024

마음이 덜 자란 초등학교 3학년 석이.

사실, 너는 따뜻함이 그리웠던 것이지.

처음 본 석이는 매우 조용했고, 말이 없었다.

항상 그러했듯 수학이란 놈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다.

한없이 발랄한 아이들을 조용하고 말이 없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수학을 좋아하긴 했었나 보다.

말이 많았던 말괄량이 계집애가 새초롬하게 변한 것은

수학을 풀면서부터였으니 말이다.

 

석이는 3단까지 겨우 외우고 있었다. 그것도 3 곱하기 5까지만.

4단도 4 곱하기 5까지만 외우고 있었다.

이상 앞자리가 2 이상 나오는 답은 헷갈려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을까.


너무 심각해서 할 말을 잃었다.

석이의 담임선생님은 이 사업을 맡고 계시는 부장선생님이셨다.

부장선생님은 나더러 꼭 좀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필요한 물품이나 책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수학시간에는 계속 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래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어쩔 수 없이 자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알겠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석이가 내 속에 깊이 자고 있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바로 결손가정의 불안한 심리상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어 학습으로의 준비가 안 된 상태.

그로 인해 강사인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태.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뭘 해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의 상태.

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상태.

딱 그 상태는 내가 가진 트라우마다.


처음에는 몰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발달에 맞지 않은 선행학습의 부작용(?) 같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아이들은 속도만 조절해 주면 금방 페이스를 찾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케이스는 심리상태부터 점검을 해야 하는 경우라, 시간도 더 많이 들고, 처음부터 학습 따위는 집어던져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기초공사도 안 된 땅에 고층아파트를 지으라는 것과 같은 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하는 것도 많은 품이 들어간다. 일단 담임교사나 누군가가 부모에게 이런 상태임을 알리던가. 부모스스로 상담기관이나 검사를 받거나 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부정하는 경우다. 저학년시기까지는 그래도 주양육자와 가장 가깝게 지낼 터인데, 그 지경까지 갔다는 것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할 확률이 많다. 부모가 문제를 받아들였다고 치자. 그러면 부모는 그동안의 했던 모든 것들을 바꿔야 한다. 양육방식이든 시간을 조정하든 아이와 시간을 많이 가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계속 수정하고 적용하는 등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난하고 힘든 과정일 수도 있는 이 과정들을 과연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수학학습만 시키기로 한 나의 임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음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한편, 이는 나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는 대부분 수학선생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수학을 공부하지 않겠다는 몸짓과 텔레파시를 보낸다. 마치 경계하는 늑대와 같다.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낼 듯 말듯하는 야생늑대말이다. 다가오면 물어뜯어버릴 기세로 한껏 노려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석이는 그렇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수막대를 가지고 가서 더하기의 업그레이드버전이 곱하기라는 걸 알려주었다. 이런 건 아주 쉽지. 조금은 경계가 풀어진 상태에서 간간히 게임도 하면서 겨우겨우 80분을 채웠다.


주 2회 4차시는 석이에게도 너무 부담이었을 것이다. 40분도 앉아 버티기 힘든 아이인데, 80분 동안 앉아서 숫자와 대화하려니,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학습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는 학년이다. 그래서 그동안 안 배웠던 영어도, 과학과 사회라는 엄청나게 체계가 짜인 학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초등학교 2학년까지 진득이 앉아서 수학이든 과학이든 나와 연결된 세상에 이것들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수학은 특히나 그렇다. 계속 문제를 풀어보려는 끈기와 인내, 그리고 특히 중요한 호기심은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길러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석이는 그렇지 못했다. 석이에게는 이 모든 짜인 세계가 힘들었었나 보다. 담당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쉬는 시간마다 '애기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애기가 되거나 자신보다 작은 아이나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 도와주는 놀이 말이다.


그러니, 어떤 수업도 석이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수학수업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수업하기를 멈추고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석이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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