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아이들은 발달에 맞지 않은 선행학습의 부작용(?) 같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아이들은 속도만 조절해 주면 금방 페이스를 찾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케이스는 심리상태부터 점검을 해야 하는 경우라, 시간도 더 많이 들고, 처음부터 학습 따위는 집어던져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기초공사도 안 된 땅에 고층아파트를 지으라는 것과 같은 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하는 것도 많은 품이 들어간다. 일단 담임교사나 누군가가 부모에게 이런 상태임을 알리던가. 부모스스로 상담기관이나 검사를 받거나 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부정하는 경우다. 저학년시기까지는 그래도 주양육자와 가장 가깝게 지낼 터인데, 그 지경까지 갔다는 것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할 확률이 많다. 부모가 문제를 받아들였다고 치자. 그러면 부모는 그동안의 했던 모든 것들을 바꿔야 한다. 양육방식이든 시간을 조정하든 아이와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계속 수정하고 적용하는 등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난하고 힘든 과정일 수도 있는 이 과정들을 과연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모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수학학습만 시키기로 한 나의 임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음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한편, 석이는 나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는 대부분 수학선생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수학을 공부하지 않겠다는 몸짓과 텔레파시를 보낸다. 마치 경계하는 늑대와 같다.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낼 듯 말듯하는 야생늑대말이다. 다가오면 물어뜯어버릴 기세로 한껏 노려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석이는 그렇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수막대를 가지고 가서 더하기의 업그레이드버전이 곱하기라는 걸 알려주었다. 이런 건 아주 쉽지. 조금은 경계가 풀어진 상태에서 간간히 게임도 하면서 겨우겨우 80분을 채웠다.
주 2회 4차시는 석이에게도 너무 부담이었을 것이다. 40분도 앉아 버티기 힘든 아이인데, 80분 동안 앉아서 숫자와 대화하려니,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학습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는 학년이다. 그래서 그동안 안 배웠던 영어도, 과학과 사회라는 엄청나게 체계가 짜인 학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초등학교 2학년까지 진득이 앉아서 수학이든 과학이든 나와 연결된 세상에 이것들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수학은 특히나 그렇다. 계속 문제를 풀어보려는 끈기와 인내, 그리고 특히 중요한 호기심은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길러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석이는 그렇지 못했다. 석이에게는 이 모든 짜인 세계가 힘들었었나 보다. 담당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쉬는 시간마다 '애기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애기가 되거나 자신보다 작은 아이나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 도와주는 놀이 말이다.
그러니, 어떤 수업도 석이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수학수업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