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벨의 소나타 가단조
라벨의 소나타 가단조를 들었습니다. 연주를 듣는 내내 이상한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안개 같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안개의 이미지는 곧 습기를 한껏 머금고 있는 녹음진 언덕으로 이어졌습니다. 황량한 듯 쓸쓸한 안개 속을 지나갔던 작년의 여행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조금만 뒤로 가면 곧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만큼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뒤로 세 걸음 가면 사라지고, 다시 세 걸음 오면 나타나고, 다시 뒤로 세 걸음, 앞으로 세 걸음, 그런 이미지를 연상했습니다.
이미지는 마치 꿈처럼 이어집니다. 이럴 땐 현실에서도 꿈을 꿀 수 있다니까요. 엉뚱한 바닷가의 밀물 썰물이 내가 걸어오고 뒤로가는 이미지들 속 잠깐씩 나타납니다. 그 반복의 순간은 음악에 맞춰 빨라집니다. 음악의 절정에 맞춰 고조됩니다. 뿌연 안개 속을 혼자 걷던 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웃음소리가 얄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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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끝나고 새로운 연주자들이 들어옵니다.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인 노래 속 검은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그들의 팔 다리가 연주 공간 곳곳이 흩어지는 상상을 합니다. 연주 공간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넓고 호화스럽고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