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어 앞은 뿌연데,
꺼먼 심연을 손 길게 뻗어 허우적댄다.
손마디에 느껴지는 형태들
무언가 형언할 수 없어도
안도를 하고...
그도 잠시,
또 다시 길을 잃어
앞이 보이지 않는 죽음과 같은 계곡에서
돼지가 될까나?인간이 될까나?
히죽거리는 소리들 웅웅대는 날갯짓 사이로
더듬거리며 나아간다.
곧 마음속 깊이 걱정이 둥지를 틀게 되고,
거기 남모르는 고통이 생겨나
불안스레 흔들대며 기쁨과 안식을 방해한다.
걱정은 항상 새로운 탈을 쓰고 나타나는즉
집과 농장, 아내와 자식,
또는 불, 물, 비수 그리고 독약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두려워 떨고,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놓고 줄창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나는 신들을 닮지 않았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쓰레깃더미를 파헤치는 벌레와 닮았다.
쓰레기를 먹으며 살아가다가
나그네의 발길에 밟혀 파묻혀버릴지도 모른다.
이 높은 벽을 칸칸이 막으며
내 주위를 비좁게 만드는 이것들도 쓰레기가 아닐까?
어디서나 인간들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
어쩌다 하나쯤 재수 좋은 놈이 존재했다는 것,
그걸 알려고 수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ㅡ
텅 빈 해골바가지야, 왜 너는 나를 향해 히죽거리느냐?
너의 두뇌도 한때는 나처럼 헷갈리면서
안락한 날을 희구하고, 답답한 어스름 속에서
열렬히 진리를 찾아 처량히도 헤매었겠지?
파우스트